쇼펜하우어 명언, 그리고 내 생각 끄적이기 Part 3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자신과 관계에 대하여>
39.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다.
ㄴ 홀로 있는 시간이 나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사유할 수 있음이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나에게 더 큰 힘이 되고 있다.
<관점에 대하여>
66. 인간이 공통으로 지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어리석음을 어리석음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ㄴ Know Thyself 가 떠오르는 아포리즘이다. 메타인지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수긍이 된다.
67.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AZ's Theory 병동내 아재론>
Know Thyself,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알려진 아포리즘이다. 요즘에는 메타인지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전달이 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제삼자처럼 바라볼 수 있는 상태를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라 말한다.
병동에 오기 전 하던 일이 감정노동이었다. 그래서 내 말이나 태도에 대해 조금은 제삼자적 시선에 두어 생각하는 것이 훈련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 업무가 메타인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내가 객관적으로 어떤 감정인지, 어떤 어휘를 쓰고 있는지, 내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맞는지, 발성이나 발음 등도 신경 썼으니 말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에 대해 아는 과정이기도 하나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안다는 말해야 한다는 <논어>에서의 어록처럼 말이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안다고 말해야 한다는 부분만 혹은 잘 모르는 부분이란 사실을 고지하고 말을 하는 게 좋다. 어리석은 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리석음을 인지했음에도 타인에게 전가하는 태도가 진정한 어리석음이다.
우리네 삶은 티끌과도 같다. 짧은 생을 마치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삶이나 생애가 하찮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작디작은 인생이기에 이를 인지하고 있다면 덜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