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명언, 그리고 내 생각 끄적이기 Part 4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AZ's Theory>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과 권태가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지금 내가 고통은 줄어들고 권태가 올라간 상태가 되었다. 8년만에 다시 찾아온 병동에 있었다. 고통이라 해봐야 응급실 지원비 관련에 대한 걱정 뿐이었다. 입원 비용으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약간 있었다. 허나 이러한 비용도 내가 누리는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거에 비하면 큰 돈은 아니다.
병동에서 첫 주말을 맞이하고 나서 쓴 기록을 옮겨적고 있다. 당시의 일주차 이후에 문제는 권태오룸이다. 지루함과 싸워야 했다. 컵라면을 기다리며, 마치 고도 기다리며의 한 서사처럼 권태롭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다렸었다.
"인간이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지옥으로 보내 버린 천국에는 무료함 밖에 남아 있지 않다."
ㄴ 인간은 삶이 고통과 고뇌로 점철되어 있기에, 이를 그만하고자 한다. 고통과 번민의 끝에는 권태,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무료함과 따분함 등의 감정이 드는 걸 배부른 소리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배부른 소리가 맞다. 그래서 인간은 다시 고통과 고뇌의 길을 가기로 자처한다. 허나 무료함의 세상에서 사는법을 익혀야 다시 고통과 고뇌의 시절로 버텨낼 수 있다.
"정신이 풍요로워 질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ㄴ 현명한 사람 일수록 무료함도 잘 견뎌낼 수 있다. 사색과 성찰의 시간만큼 내면의 풍요를 끌어올릴 활동이 없다. 우리는 신체적-물리적-공간적 제약이 있다. 허나 정신활동은 거의 우주적 원리와 유사할 정도로 광활하다.
"현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ㄴ 쇼펜하어우는 소극적 행복론, 즉 적당한 크기의 불행을 감내한 인생이 나도 좋다.
"자살이란 비참한 이 세상에서 실제적인 구원을 받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도덕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배치된다."
ㄴ 쇼펜하우어는 자살이란 방법은 거부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은 고통이며, 이를 해탈이 아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반출생주의적 사고로 견디란 뜻이다.
"누구나 내일이 오지 않길 한 번 이상은 원했다."
ㄴ 누군가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시도를 했다면, 그는 누구보다 세상에서 살고싶었던 사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