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Holo.. 도시의 수도승을 꿈꾸며, with 오늘의구절 250606
For whoever wants to save their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their life for me and for the gospel will save it.
Mark 8:35 NIV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코 복음 8장 35절
이순신 장군의 어록으로 알려진 생즉사 사즉생,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가치관이 높히 평가 받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희생을 통해 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를 구한다는 생각을 한다는게 일반적인 인물에게서 나오기 힘들다. 나는 신격화된 예수 이전에 인간 예수의 삶 만큼은 비종교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정신이라 말하고 싶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오롯한 상태에서 희생정신을 갖추는 데 있다고 본다. 그것이 죽을 각오로 삶에 임하는 태도다.
오늘 오전은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가볍게 산책했다. 워낙 고인물들이 많은 라이딩의 세계에서, 난 그저 걷거나 뛰기에 무거운 몸을 자전거에 얹어서 산책할 다름이다. 해안도로를 가면 탁 트인 시야, 그곳에서 바다가 있는 풍경을 보는 맛이 있다. 이러고 있으면 나도 오롯한 아재가 다 됐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이 아닌 진짜 아저씨 말이다. 마치 좋은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어 프로필로 하는 그런 나이듦, 그게 나다.
용담해안도로, 어영공원 벤치에 당도 했다. 그곳에서 책을 가볍게 읽고 여유를 만끽했다. 나름 땀도 촉촉하게 나고 해서 뿌듯했다. 일단 그렇게 오전을 보냈다. 당분간 운동은 자전거가 될 듯하다. 수영이나 복싱을 못하니까 괜히 운동을 안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자전거 산책으로 꾸준충을 이어가고자 한다.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정말 Anger Managent, 분노 다스리는 훈련이 된다. 보행자도 아닌, 차량 운전자가 아닌 그 입장이 참 불편하다. 보행자들 중에 자전거를 보면 피하기 하지만 알아서 피해라 유형의 사람도 많다. 이젠 익숙해져서 요리조리 다니곤 한다. 자전거 도로가 보행자도로랑 뒤엉켜 있으니 말이다.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더 무섭다. 자전거를 타고 좌우전후 계속 살펴도, 차량이 우선시 되는 도로환경이라 참으로 인내심이 바닥이 난다. 요즘은 도시의 수도승이 되기 위한 훈련이라 생각하며 산다.
Monk in the city, 이런 마음으로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아마 예전의 멘탈리티였다면 깊은 동굴 속으로 침장하는 우울감에 빠져 살았을 상태다. 사람도 피하고, 방구석에서 어둠을 벗 삼아 살았을 시기이다. 요즘은 조금 울적해지면, 밖으로 나선다. 밖으로 나가서 내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전기자전거라도 대여한다. 그렇게라도 달리면 하루가 조금은 밝은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우울한 감정을 흘러보낼 수 있는 것도, 아마 그동안의 좋은 습관들이 루틴을 넘어 의식화 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좀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시간임을,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