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을 한번의 파티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인생을 일종의 연극 무대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문득 누군가의 말처럼 파티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파티는 즐겁던 불편하던간에 결국 끝이 있게 마련이다. 파티라고 해서 화려하고 즐겁기만 하지 않다. 어딘가에서는 소외되는 순간이나,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진행하는 입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역할에 처한 이들은 괴로울 수 있다. 파티라는 상황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주인공일 수도, 샴페인이 가득한 쟁반을 손에 들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엑스트라가 될 수도 있다.
고단함도 화려함도 결국 내가 그 파티, 인생이란 현장에서 맡을 역할들이다. 어쩔때는 허망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행복함에 젖는 순가도 존재한다. 삶이란게 마냥 좆같지만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인생, bittersweet life 란 표현이 딱 와닿는다. 달콤함을 느끼는 힘은 결국 씁쓸하기에, 인생은 고통이기 때문에 잠깐의 달콤한으로 견디는 듯 하다. 다만 그 달콤함이 언제 오느냐는 모르기에, 겨울이 언제 올지 모르는 왕좌의 게임의 상황과 반대의 경우라 볼 수 있다.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철학의 제1 사유는 인간이 왜 자살하지 않는가에 있다지만, 나는 왜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많았다. 아마 배부른 생각이었을지 모른다고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는 정말 살기싫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인생에서 치열하게 버텨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이다. 나도 항상 위를 쳐다보며 열패감으로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밑을 보며 우월감으로 자위하지는 않았기에, 내 삶은 어디에 기준점을 두고 만족감을 느껴야 할지 고민했었다.
이런 고민도 사라진 순간에는 살아야할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산송장처럼 지내기도 했다. 파티의 화려함과 무대 뒤에서 오물들을 치우는 공간에서 내 자아는 행복과 절망을 파도처럼 오갔다. 이게 파티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그만큼 인생을 정의내리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나보다. 보통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삶이 한편의 영화다, 책한권이 나온다는 등의 말을 하곤 한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 사연을 두고 의미부여를 하니 말이다. 나도 그렇다.
파티가 끝났으면 한다. 화려한 피날레는 바라지도 않는다. 각자 만든 쓰레기는 치우고, 내가 흘린 오물들을 치우고 나서 조용히 퇴장하고 싶다. 그리고 행복하더라도 파티는 길지 않아야 한다. 빨리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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