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4

네팔부부와의 우연한, 그리고 소중한 만남의 시작

호주로 떠나면서 휴학 신청을 했다. 6학기, 3년이 지나면 제적이 된다는 조항을 읽고 내린 결정이었다. 떠나면서 나는 이제 진흙탕으로 간다고 어렴 풋이 느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다 나오는 세상이다. 구글에 '호주 워홀의 현실', '호주이민의 실상' 등을 보면서 대충은 알았다. 그리고 친구가 먼저 퍼스에 가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경험담도 한몫했다. 그래서 딱히 기대에 부풀어 가진 않았다. 그저 사람들 눈을 피해 이방인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나는 이제 어디서 살더라도, 이방인으로 살게 되겠구나. 제주에 가도, 서울에 가도, 퍼스, 밴쿠버.. 어디서든 말이다. 결혼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기 퍼스 정착은 친구의 도움..

22-01-14 King James

퍼스와 밴쿠버에서 지낼 때 나는 James 였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당연 돈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갔으니, 이력서를 만들었다. 마침 구글로 이력서 견본을 땄는데, James park 이였다. 마침 나랑 같은 박 씨였네. 그래서 James로 살았다. 보통 한국인들은 영문 이름을 따로 만들어서 생활한다. 아무래도 서양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그렇기 떄문에 혹시나 일을 할 기회를 놓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기인하다,라고 추정한다. 뭐 꼭 한국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보통 다른 동양계 이민자 친구들은 그냥 자기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뭐 여하튼 나는 도망노비로 신분을 세탁(?) 하려고 간 거니까 나중에 영문 이름으로 James라고 바꿀 야심(?)까지 있었..

22-01-11 나이 27살에 해외로 추노했었다. 질문받는다

임시저장 안 해서 다 날아갔다. 2016년 말, 밴쿠버에서 원치 않은 귀국(?)을 통해 제주로 낙향한 뒤로 내가 살아왔던 서사가 불투명해졌다.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이다. 2013년 대학생 신분과 이별하고 제주로 낙향한 뒤, 자의 반 타의 반 선택한 추노, 도망 노비의 길을 조금씩 꺼내고자 한다. 기억이 잘 안 나서 드문드문 올려보고자 한다. 조각난 기억 안에서 가끔 떠오르면 올리기로 한다. 서울생활에서 제주로 꺼끌어 떨어지면서, 내 멘탈리티로는 한국에서 생존하기는 힘든 세상이다. 다소 황당한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해외는 좀 나을 것 같다는 환상, 명백히 착각이었지만 어쨌든 그땐 뭐 앞 뒤 가릴 것 없이 그냥 제일 빠르게 한국을 탈출할 루트를 찾았다. 독일 워킹홀리데이, 아일랜드 유학, 필리핀 ..

22/01/07 치매 어르신과의 대화

30대 요양보호사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7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대량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직업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잠깐 6개월 정도 한 것까지 하면 대충 5년 차라고 퉁칠 수 도 있겠네요. 그러나 4년의 기간은 거의 제대로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튼 차차 풀어나가고 오늘은 치매환자와 대화하는 법(?)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Dementia, 치매란 단어를 접한 것 호주에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생활이었으니, 그 나라의 용어로 학습을 했죠. 그렇게 자격증을 위해 되지도 않는 영어로 요양보호사 공부를 했고, 단기속성으로 치매나 여러 노인성 질환(기억도 안나죠 사실)을 학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