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3

네팔부부와의 우연한, 그리고 소중한 만남의 시작

호주로 떠나면서 휴학 신청을 했다. 6학기, 3년이 지나면 제적이 된다는 조항을 읽고 내린 결정이었다. 떠나면서 나는 이제 진흙탕으로 간다고 어렴 풋이 느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다 나오는 세상이다. 구글에 '호주 워홀의 현실', '호주이민의 실상' 등을 보면서 대충은 알았다. 그리고 친구가 먼저 퍼스에 가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경험담도 한몫했다. 그래서 딱히 기대에 부풀어 가진 않았다. 그저 사람들 눈을 피해 이방인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나는 이제 어디서 살더라도, 이방인으로 살게 되겠구나. 제주에 가도, 서울에 가도, 퍼스, 밴쿠버.. 어디서든 말이다. 결혼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기 퍼스 정착은 친구의 도움..

요양사!! Carer!!

나는 제주에 사는 30대 요양보호사다. 제주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는 4년이 넘었고, 퍼스에서는 6개월 동안, Carer로 지냈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 퍼스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김없이 오늘도 "요양사!!"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몸은 어르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르신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고, 다시 업무를 수행했다. 그 와중에 Belmont nursing home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독일에서 온 1세대 이민자, 프란츠 이야기다. 아시다시피 영어권에서는 나이의 고하를 떠나 서로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프란츠 라 하겠다. 프란츠는 영어를 잊은 전형적인 Dementia 환자였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밤이고 낮이고..

22/01/07 치매 어르신과의 대화

30대 요양보호사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7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대량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직업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잠깐 6개월 정도 한 것까지 하면 대충 5년 차라고 퉁칠 수 도 있겠네요. 그러나 4년의 기간은 거의 제대로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튼 차차 풀어나가고 오늘은 치매환자와 대화하는 법(?)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Dementia, 치매란 단어를 접한 것 호주에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생활이었으니, 그 나라의 용어로 학습을 했죠. 그렇게 자격증을 위해 되지도 않는 영어로 요양보호사 공부를 했고, 단기속성으로 치매나 여러 노인성 질환(기억도 안나죠 사실)을 학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