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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

p5kk1492 2024. 6.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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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악취가 난다, 아니 악취 난다며 수군거린다. 

 

20xx 년 xx월 xx일 xx시

 

잠깐 블랙아웃이 왔다가 일어나 보니 침대다. 분명 방문과 창문사이에 허리띠를 걸고 목을 맸는데, 죽지 않았다. 죽는 게 쉽지 않구나. 몸부림을 친건지 안경알이 하나 빠진 채 안경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빠진 안경알을 찾는데 꽤 걸렸다. 편의점 알바를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가 않네. 자살에 성공했으면 안 가도 될 일인데 그냥 잠수를 타기로 한다. 그렇게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한동안 키지 않으면 알아서 정리될 거 같다.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우울증을 핑계로 결국 인간관계를 잠수 타는 식으로 정리했고, 알바도 말없이 그만뒀다. 나를 걱정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알바사장들도 갑자기 그만둔 인간한테 돈을 주겠냐만은, 또 같은 인간들이 노동청에 곧잘 신고도 잘한다. 나는 노동청에 신고하지는 않지만, 추노를 해도 급여 일부가 들어오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받지 못한 돈에 대한 미련보다 알바로 맺어진 관계가 끊어지는 게 더 중요해서 굳이 떼인 돈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번 우울증은 꽤 심각했다. 친구들에게 죽고 싶다는 표현을 잦게 하곤 했다. 그래도 실제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처음이었다. 유서도 남기지 않은 충동적 선택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 나도 놀랐다. 사실 이번 우울증이 오기 전에 나 스스로도 내가 좀 특이했다. 지나치게 활발하게 행동했던 게 아닌가 싶다. 갑자기 기자가 되겠다며 여러 모임에 활동을 했고, 지적 소양을 기르겠다며 고전모임에서 날뛰었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쳤고, 주변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지금생각하면 미친놈으로 보였을 거 같네.

 

나는 이제 취업스트레스에 대한 우울감을 이겨낸, 극복의 결과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상황에 대해, 마치 내가 니체가 자라투스트라에서 말한다의 위버멘시라도 된 줄 알았다. 초인의 되어서 이제 내가 진정 원하는 대로 살겠구나. 오늘 내가 목을 매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추락하기 위해 잠시 기분이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것뿐이었나. 그럴 거면 성공이라도 하지, 살아있네.

 

지금도 썩 기분이 좋지 않다. 내 충동의 결과가 살아있음이란 게 딱히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둔 채, 근데 내가 목을 매기전에 껐었나. 일단은 당분간은 키지 말고 고향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다. 예약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에 문제가 있는지 일단 켜지질 않는다. 싸구려 노트북이라 방전이 되었나, 평소에 충전을 잘해둘걸. 일단은 그냥 잠이나 더 자야겠다.

 

20xx 년 xx월 xx일 xx시

 

편의점 야간알바에 몸이 맞춰진 덕에 잠이 오지 않는다. 나가봐야 고시원 사람들이랑 마주칠 텐데, 불편한 공간이다. 복학하면서 모아둔 천만 원의 절반은 등록금 한 번에 날아가고, 그 뒤에 나름 국가장학금으로 선방했다. 나머지 500은 잘 지키면서 버텼는데, 이번에 무슨 바람인지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 주 만에 다 써버렸다. 그래서 보증금 없이 급하게 방을 구한 곳이 이 고시원이다. 남의 학교 근처 고시원을 사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고시원은 다 불편하다. 방음도 안되고, 빛도 안 들어오는 좁은 감옥.

 

고시원을 살기로 한 것부터 나 우울증을 키운 원인이 아닐까 한다. 그전에 평소답지 않게 돈을 소비해 버린 것도 크지만 말이다. 기자가 되겠다는 진로도 너무 충동적인 생각이다. 나답지 않은 던 게, 난 한 번도 기자를 꿈꾼 적이 없다. 다만 내 전공을 살릴 수 없다 보니 엄청난 우울감이 찾아왔던 게 크다. 그때 심리상담센터도 찾았다. 최근 6개월간 우울증상이 있었냐는 물음에 놀랐다. 심리검사가 무슨 사주팔자 맞추는 사람들 같이 심리상태가 파악이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냥 내 상태를 아는 것까지, 그 이상은 없었다. 우울증은 커져갔다.

 

우울증이란 걸 알아도 내 우울감을 해결할 방법을 몰랐다. 우울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괴로웠다. 사람들은 다들 취업준비에 바쁠 시기였고, 진로를 정하기 바빴다. 누가 어떤 상태인지 고려할 만한 상황들이 아니었다. 나도 주변 친구들보다 고향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고시원에 돌아와서 하는 일은 구글로 xx전공 전망, xx전공 취업 후기 등 내 전공으로 살아남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검색하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울감이 사라지고, 내 스스로에게 뭔가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긍정적인 생각들이 머리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자란 진로가 자리 잡혔고, 미친 듯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엄청 말이 많고 긍정적인, 바쁘게 사는 대학생이란 이미지를 가졌다. 과하게 말하지만, 또 이런 성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나를 좋게 봤다. 은근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착각인가. 이런 에너지라면 늦게나마 기자로 진로를 잡아도, 내가 언론고시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가까운 긍정적인 전망을 가졌다.

 

에너지가 넘치는 삶은 2-3주가 지나지 않아서 사그라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와도 결국 끝나버렸다. 서서히 우울감이 차오르더니, 내 감정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 앞에서 적당히 재밌게 보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버거웠다. 예전에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아닌 적당히 리액션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래도 리액션이나 간간히 툭툭 던지는 눈치는 남아있어서, 그냥 별일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모임이 끝나 고시원에 돌아오면 마음의 지옥이 열렸다. 이때부터 자살에 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가 자살에 실패한 게 아쉽다. 어떻게 해야 확실히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렇게 지독한 우울감으로 산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 그때에 에너지 넘치는 시절이 차라리 그립다.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나 자신이 당당했다. 그래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지금의 나보다는 났지 않을까. 컴퓨터라도 켜지면 좀 더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텐데.

 

20xx 년 xx월 xx일 xx시

 

내가 잠깐 잠을 잤나. 이제 사람들 발걸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대충 아침이 된 거 같다. 내 방은 창문이 복도에 있어서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다. 5만 원 아끼려고 외창이 없는 곳에서 이렇게 썩어간다. 진짜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에 돌아오면 돈을 빌려서라도 원룸에서 살 생각이다. 고시원은 감옥이다. 

 

그래도 이번에 고시원을 인수한 원장님은 좀 괜찮은 분 같다. 내가 고시원에서는 조용히 사는 입장이라, 투명인간일 텐데도 말을 걸더라. 우연히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퇴직한 부장 출신이라고 했던 게 언뜻 기억이 난다. 내 고향에 대해서도 묻고, 자상하게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꼰대같이 이게 답이다라는 느낌보다,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격려의 말에 가까웠다. 부장까지 하고 나와도 할 수 있는 게 고시원 원장이라는 게, 주제넘게 안타까웠다. 자신의 커리어를 살리지 못하는 중년, 커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죽음을 생각하는 나.

 

내 성격상 누군가 안면을 트고 다가오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래서 웬만하면 원장님과 덜 마주치려고 했다. 지금 내가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도 혹시나 원장과 마주칠까 봐 그냥 방에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뭐 이제 잠수 타는 마당에 방에서 나갈 일도 없다. 화장실이나 가야지 뭐, 씻을 생각도 없다. 조금 냄새가 나려나. 그래봐야 방에 있을 텐데 2,3일 정도는 괜찮겠지.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뭐라도 먹어야 할까.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 싶다. 우울증이 오면 엄청 먹어대거나, 아니면 굶는 상황이 온다. 나는 전자의 경우를 겪었는데, 이번에는 입맛도 없고 배고픔이 안 느껴진다. 화장실 갈 일 빼면 내 방에서 나갈 필요가 없으니 며칠 그냥 단식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아니, 이러다 굶어 죽으면 좋겠다. 모든 상황을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거 보니 내 우울증이 확실히 갈 때까지 간 단계 같다.

 

몇몇 발걸음이 내 방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내가 혼잣말을 크게 했나. 고시원은 방음이 너무 안된다. 한 번은 여자친구랑 속삭이듯 통화하다가 옆에서 벽을 치는 바람에 놀랐다. 다시는 방에서 소리 내지 않는다. 오늘은 죽지 못한 다음날이기도 해서, 나도 몰래 혼잣말을 해버렸나 보다. 그런데, 내 방 앞에서 멈칫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왜지, 혹시 내 창문틈 사이에 혁대가 걸려있어서 원장님에게 말하려는 건가. 저걸 치워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귀찮다. 그냥 지나가다가 잠깐 스탭을 바꾼 거겠지. 내 창문틈에 검은 물건이 혁대라고 보일지 알게 뭔가. 아마 쳐다도 안 볼 거다. 내가 죽었어도 발견되는데 일주일은 넘게 걸렸을 거다.

 

20xx 년 xx월 xx일 xx시

 

내가 방에서 안 나간 지 며칠이지, 오래는 안된 거 같은데 한 이틀정도는 지난 거 같다. 이 정도 생활반응이 없으면 혹시 누가 실종신고 했으려 나나. 성인 남성은 아마 실종신고를 해도 보통은 잘 조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원래 내 자살계획은 발견되기 힘든 곳에서 실행에 옮기려 했던 것인데, 충동적으로 첫 시도를 고시원방에서 한 결과가 이거다. 첫 시도에 대한 실패 후유증으로 약간은 두려운 마음도 있다. 생각보다 무서운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우울증이 가져오는 무기력함도 크고.

 

내 방 주변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진다. 그러다가 원장님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도 들린다. "xx 씨, 안에 있어요?" 나는 숨죽이고 없는 척한다. "좀 냄새가 심한데, 안에 계세요 xx 씨?" 원장님은 아무래도 부장출신이라서 그런가 젠틀하게 나를 확인해 본다. 아마 예전 고시원장이었으면 이미 방문 열고 바로 뭔 냄새냐며 따졌을 텐데.

 

나는 내 방에 음식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먹더라도 빨리 바깥에 버리기 때문에, 현재 내 방에는 냄새날 만한 게... 나 말곤 없다. 나한테서 냄새가 나는 건가? 아직 이틀 정도 안 씻은 거 말곤 냄새가 밖에까지 날일이 없는데. 하긴 내가 액취증 때문에 수술하기도 해서, 남들보다 냄새가 좀 더 날 수도 있다. 그래도 방문을 뚫고.... 아 방문 위에 창문이 열려있어서 내 채취가 밖으로 나가나 보다. 목매달려고 창문을 열어놨더니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상황이 좀 잠잠해지면 조용히 나가서 원장님에게 이야기해야겠다. 외출하고 돌아온 척도 할 겸 새벽에 나갔다 와야겠다. 근데 언제가 새벽이지

 

20xx 년 xx월 xx일 xx시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냄새가 나서 밖에서 잠갔나. 아니 고시원 방문은 안에서 잠그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문이 고장 나서 나가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러면 새벽에 나갔다 온 척은 힘들고, 너무 피곤해서 요즘 잠자면 못 깨어났다고 변명을 해야겠다. 아마 아침이나 점심즈음이 되면 방에 한번 더 찾아올 것이 예상된다. 냄새 때문에 다른 원생들의 민원은 해결해야 하니 말이다. 괜히 원장님께 죄송하다.

 

우울증이 깊게 찾아오니, 그냥 나 인생 자체가 민폐였지 싶다. 누군가에게 항상 민폐를 끼치는 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가족들에게도, 하나뿐인 아들이 서울까지 가서 이렇게 죽지 못해 산다는 게 민폐다. 주변에 나를 걱정해 주던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말도 없이 사라진 것도 민폐, 아르바이트생으로 하나 뽑았더니 말없이 펑크 나고 사라지는 것도 민폐였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민폐다. 자기는 전공을 살리면서 하고 싶은 일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와놓고,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 내 전공으로는 밥벌이 안된다는 판단, 절박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꿈도 쉽게 버리는 나 자신이 참 한심했다. 스스로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데, 고시원 고장 난 방문을 부여잡고 내 삶을 돌아보고 있다. 더 살아봐야 민폐일 거 같은데, 이대로 굶어 죽을 때까지 발견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다음에는 원룸에서 고독사를 도전해 봐야겠다. 한심하게 죽다 살아도 또 죽을 궁리다.

 

2013년 6월 23일 오전 5시 13분

 

악취는 심헀는지, 아침이 되기 전에 내 방 주변의 원생들이 잠든 총무를 깨워 원장에게 항의를 넣었다. 결국 방문을 동의 없어 열어서라도 일단 악취를 해결하라며 말이 나왔다보다. 그렇게 노크를 몇 번 하고 대답 없는 나를 무시하고 결국은 내 방문은 열었다. 열쇠를 넣고 돌리니, 고장 난 내 방문은 쉽게 열렸다.

 

방문이 열리고 몇 시간 뒤 경찰이 내 방을 살폈다. 폴리스라인이 쳐졌고, 사태는 심각해졌다. 그런데 경찰이나 원생, 원장 모두 침대의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다들 침대 옆 바닥을 바라보고 굳어있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그게 나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내 시체다. 내 시체가 침대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자살했다.

 

내가 허리띠를 창문과 방문 틈에 걸고, 목을 맸던 순간 블랙아웃이 왔다. 그렇게 1분이 안 되는 블랙아웃뒤에, 미친듯한 몸부림의 기억이 꿈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나의 자살행위를 벌하듯, 나는 그렇게 몸이 발작을 했다. 그렇게 나는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나는 실패한 줄 알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죽은 내 몸에서 2,3일 정도가 지나자 악취를 풍겼고, 고시원의 구조상 그 냄새는 주변에게 내가 저지른 짓을 인지하게 했다.

 

그래도 그 악취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죽인 추악한 몸뚱이에서 풍기는 썩은 내였다. 내가 안 씻어서 나는 냄새가 아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