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볼만한 단편이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배경인 세상, 안전한 벽을 향해 소년과 소녀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이에 다다른다. 철저히 가지생존에 입각한 소년과 어머니의 희생을 가슴에 안고 찾아온 소녀, 둘중 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벽 너머의 지도층 이 세가지 시점에서 서사를 바라볼 수 있다.
단순하게 보자면 소녀의 몰입이 되어 소년이 이기적인 태도에 반감을 갖게 되고, 초코바를 베푼 소녀의 온정보다 초코바 껍데기를 함부러 버린 태도를 비판하며 소년을 벽너머로 받아들이는 지도층의 어의없는 가치판단으로 감상을 끝낼 수 있다. 비틀어서 보면, 소녀의 관점과 소년의 태도, 그리고 지도자들의 어이없는 결정과정에 담겨있는 그들만의 서사를 상상해볼 수 있다.
단편을 보고 나의 생각을 곱씹자면, 살다보면 내가 의도한 행동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꽤 많이 겪게 된다. 특히 내가 어떤 말이나 글을 전달할 때, 내가 의도했던 내용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흔다. 그래서 왠만하면 내 말과 글을 비판하지, 받아들이는 타자에 대해서는 그냥 수긍하려 한다. 내가 개떡같이 말하니 상대도 그렇게 전달 받을 수 밖에. 소녀는 어머니가 준 마지막 유품같은 초코바를 나눠주는 온정을 베풀었으나 껍데기를 무심코 버렸다. 누가 볼줄 알았을까. 그냥 껍데기일 뿐인데, 그 친구는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말과 글을 최대한 꾸준히 남기려고 한다. 누군가는 알아주고, 누군가는 조롱하더라도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것이 그냥 봇처럼 댓글을 다는 사람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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