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대하여?>
1.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과 같고 현재는 강물에 부딪쳐 부서지지만, 물결과 함께 쓸려가 버리지 않는 바위와 같다.
ㄴ 시간을 강물에, 그리고 현재를 바위로 비유한 부분이 흥미롭다. 수긍이 되는 비유다. 흔히 세월을 흘러간다고 비유한다. 시간이란 변하는, 잡을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등의 특성을 지닌다. 지난 날에 대한 한스러움, 죄스러움, 그리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별 수 없다. 다가올 미래로 짐작한다. 그러한 점에서 현재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바위처럼 우뚝 솟아있다.
ㄴ 세월이란 감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느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이러한 시간과 혐재에 대한 아포리즘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의 나에게는 현재, 과거, 미래 모든 시간이 담겨있다.
3. 인간은 현재와 더불어 미래와 과거 속에서도 산다.
ㄴ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아포리즘이다. 결국에는 지금(현재)의 "나"안에 과거와 미래 모두 담겨져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 이성적 판단, 처한 현실, 대처하는 자세가 방법이 (과거, 미래)가 함께 담겨 상태인 셈이다.
5.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ㄴ 인생은 고통이다. 우리는 최대 만족의 상태에서 고통이 덜어지는 대신에 무료함이 올라온다. 무료함에서 결국 고통의 늪어로 미끌어져 내려간다. 이는 슬라보예 지적이 박사논문에 언급했던 "욕망의 미끌어짐"('프로이트의 혀'란 개념어에서 용어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에 따른 설명과 맞닿아있다.
ㄴ 쉽게 설명하자면 "한계 체감 효용의 법칙", 일정 욕구가 만족스러우면 결국엔 그 욕구를 채우는 효용감이 더 오르지 못한다.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의문점이 든다.
6. 세상이란 실은 지옥이다. 인간은 한편으론 고통받는 영혼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 영혼 속의 악마이기도 하다.
ㄴ 고통을 느끼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외부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내재적 고통, 즉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 중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어쩌면 외부에서 겪는 고통보다 스스로 가해하는 고통이 더 클지 몰겠다.
ㄴ 죄책감이나 자책, 자기혐오등으로 괴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영혼 속 악마로부터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9. 우리 인생의 여러 장면은 거친 모자이크 그림과 같다. 가까이 보면 아무 매력이 없고 멀리서 보아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ㄴ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주변에 사람들을 보다보면 각자의 비극적인 서사가 있다. 친하지 않을 때 다들 그럭저럭 사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다 사람마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14. 인생이란 출발점에서 보면 끝이 없는 것 같지만, 종착점에서 되돌아 보면 매우 짧다.
ㄴ 지나고 보면 짧은 것이 인생이다.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16. 배가 안전하게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 싣는 배의 바닥 짐처럼 누구나 항시 어느정도의 걱정이나 고통, 고난이 필요하다.
ㄴ "어느정도"가 중요하다. "적정", "고난", "고통"이 난파될 정도까지 가면 안된다.
17. 운명은 나아질 수 있다.
ㄴ 에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해피엔딩을 바라진 않았다. 다만 과거의 나는 "왜?"란 물음에 집착했다는게 "지금의 나"와는 다르다. 과거의 나는 "13년도의 자살시도" 실패 후 어째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되내었다. 16년도에 다시금 벌어진 조증삽화로 인해 영주권준비마져 좌절되었을 때, 한국에서 어쩔 수 없이 5년가량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순간에 대해 절망감을 되새김질 했다. 그리고 지금 25년도에 같은 문제로 다시 이 운명에 대해 처연히 바라보고 있다.
ㄴ 지금의 나는 "왜?"보다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의 나라면 "왜, 양극성 장애에 대해 병식이 있음에도 결국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가", 지나간 일에 생각이 매몰되어 있었을 테다. 허나 우리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대처해 나가는게 중요하다. "왜?"라는 해결하지 못할 생각은 접어두고, "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ㄴ 앞으로도 양극성장애 제1형으로 인해 병동 신세를 질 가능성은 많다. 지금 내가 하던 활동이 모두 중단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말하는 활동은 유지가 된다. 수영, 복싱, 그리고 붕사활동 등이 머리에 맴돈다. 특히 봉사는 내가 힐링이 많이 되던 활동이다. 선한 영향같은 것은 생각도 않는다. 가당치도 않은게 봉사가 주는 내면의 풍요가 있다. 네가 종하서 봉사하는 것이지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돈을 받지 않고 하는 활동이기에 더 보람차다.
ㄴ 역사교육, 호주워홀, 그리고 교육봉사는 어찌보면 내가 선택한 행동 중에 큰 기쁨을 주었던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지금 가장 생각 나는 것은 내가 교육봉사를 하다 멈춰버렸던 것에 있다. 내 도움을 받아 이주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면 좋으련만, 내가 좀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ㄴ 앞으로 어떤 운명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만, 내가 내가 택한 길에서 운명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역사를 전공을 택했을 때처럼 말이다. 자살시도 이후에 대학 포기하고 도망치듯 택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처럼, 누군가에게 필요로 함을 느끼게 해준 봉사활동에 내 운명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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