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the Draftsman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but I still have written that s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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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 43

251 초인을 기다리며 252 사랑을 빨아들이면 해면 253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 하루 한장 니체 아포리즘

2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위버멘시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벗이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함께 이상향을 지향하는 타자가 있다는 것의 유의미함을 논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말벗에 대한 특징을 정리함 251에 뒤이어 니체가 추구한 위버멘시를 향했을 때의 벗의 중요성을 재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다시 벗의 특징을 정리했다. 진리를 추구하다보며는, 때론 고독함에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허나 어쩌겠는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다고 내가 깨달은 진리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일상 끄적이기 2025.04.15

250414 오늘의 구절

최근에 Mercy가 스스로에게도 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잘았다. 자비는 절대자 혹은 타자에게 받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용서처럼 말이다. 용서도 때론 자기 자신에게 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같이 들기 시작했다. 허나 아직은 나도 잘 할 수 없다. 나자신에게 스스로 용서와 자비를 베풀만큼, 내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친절함으로 God's mercy and grace 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나에게 부디 타자에게 친절함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길 바랄 뿐이다.

일상 끄적이기 2025.04.14

Bible Verse for All 2025-04-12

자유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자유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자유를 얻은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믿는다. 비종교인들도 동의하는 점은,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랐단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었다. 그렇게 얻어낸 자유를 우리는 아무런 의식조차 하지 않고 누리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피를 먹고 자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나는 카톨릭이기에 지극히 종교적 맥락에서 글을 남긴다. 주님께, 내가 누리는 자유가 결코 쉬이 얻어진 것이 아님을 되내이며 기도합니다.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men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

일상 끄적이기 2025.04.12

249 은둔자의 벗 250 좋은 친구 하루 한장 니체 아포리즘

2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의 심연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은둔자에게 여러 심연을 들여다 보기에, 심연이 은둔자를 바라보는 과정을 겪는 그에게 벗이 필요하다. 우리는, 깊은 심연에 빠져드는 상황을 막아주는 제3자의 필요성을 제시한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제3자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무수히 널린 심연들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는 셈이다.내면의 목소리를 훈련시켜서 위버멘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일까? 위버멘쉬를 추구하는 사람 들과 서로 동경하라는 이야기다. 저자의 말을 통해, 니체가 추구하는 삶도 결국 서로 이상향을 공유하는 벗과의 삶은 제안한다.

247 보이지 않는 위인 248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하루 한장 니체 아포리즘

2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결국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 세상이 돈다고 니체는 말한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서도 언급된 내용이기도 하다. 결국 세상이 돌아가는 그 중심에는 소수의 누군가가 있다. 다수는 마치 관객처럼, 관중, 대중으로 자리한다.2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는 그대의 고독속으로 피하라 말한다. 나 홀로의 시간에서 자기극복의 주체로 성장할 시간을 가지란 말일까저자의 말을 참고하자면, 나 홀로의 시간을 갖는 것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잠시 시간을 갖는 것의 힘이란

유시민 역사의 역사 '있었던 그대로'의 생명력 없는 역사 랑케

랑케의 역사는 인간이 없는, 열정과 미학을 느낄 수 없는, 지나간 시대에서 사실의 시신(Dead body)을 건져 올린 글이 되고 말았다. 말미 저자가 역사가는 해부학이 아닌 법의학자와 같은 마음으로 역사적 사건을 다뤄야한다고 말한다. 맞는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기억이 나는 비유가 우리가 헤이스팅스 전투가 일어난 년도의 적확성을 알려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는데, 1593년도 일어났느냐 아니다 1594년도다와 같은 걸로 역사적 사실을 정정하기 위함이 아니지 않는가. 왜 1592년도에 발발하게 되었느지에 대한 인과관계와 당시 정세등 복합적은 상황에 대한 분석이 담긴 기록을 서술하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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