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홍합
통영 항구의 동춘 끝을
지나고
해명 나루 지나고
작은 통통배
용화산 뒤편을 휘돌아 가
니
첫개라는 어촌이 있었다
인가가 몇 채나 되는지
희미해진 기억
푸른 보석 같은 물빛만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친지 집에서는 내가 왔다
고
큰 가마솥 그득히 홍합을
삶아 내어
둘러앉아서 까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
던 홍합
그때처럼 맛있는 홍합은
이후 먹어 본 적이 없다
내 나이 열두 살이나 되
었을까?
어린 손님은
큰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잠은 작은집에서 잤는데
아제씨는 어장에 가고 없
었다
호리낭창한 미인형의 아
지매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두런거리는 소리
가 났다
집 안에 불이 밝혀지고
발자욱 소리도 들려왔다
덩달아 파도 소리도 들려
왔다
알고 보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는 것
날이 밝고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폐결핵인 아지매의 약으
로
고양이 새끼의 탯줄이 필
요했고
아지매는 고양이를 달래
고 달래어
탯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냐고도 했
다
첫개라는 어촌의 하룻밤
홍합과 아지매와 고양이
얼마 후 나는
아제씨가 상처했다는 소
식을 들었다
ㄴ 어촌에 사는 친지에서 맛있는 홍합, 병색이 짙었던 아지매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추억처럼 시가되어 그려지고 있다. 이번 시는 무언가 풍경과 함께 한 여인의 병색이 짙은 모습과 사연이 그려진다. 마지막에 고양이 탯줄이라는 지푸라기와 같은 심정의 약재료와 함께 한문장으로 정리하는 아지매의 죽음을 표현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728x90
반응형
'책 그리고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고윤 저 <피카소> (0) | 2024.09.30 |
---|---|
081 화내고 처벌하는 것, 하루 한장 니체 아포리즘 (0) | 2024.09.30 |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고윤 저 <마틴 루터 킹> (0) | 2024.09.29 |
080 자유와 부자유의 징후, 하루 한장 니체 아포리즘 (0) | 2024.09.29 |
박경리, 1부 옛날의 그 집 <여행> (2) | 2024.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