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박경리, 1부 옛날의 그 집 <여행>

p5kk1492 2024. 9. 2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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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여행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

는 꾸중했다

바깥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

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않는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

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

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

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

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맵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

도 있었다

바이칼호수도 있었으며

밤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

하라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

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

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

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

히말라야의 짐 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

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

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

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는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ㄴ나도 여행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글쓴이 처럼 간접적인 체험과 경험이 주는 여행을 좀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2년간의 호주생활과 1년을 채우지 못한 캐나다생활은 내가 삶에 있어 중요한 경험을 했던 시기였다. 짧은 여행이 주는 경험치보다, 간접경험할 수 있는 책이나 영화등과 같은 세계관이 좋다. 아니면 예전처럼 한 1년이상의 장기체류라면 직접경험의 이점을 살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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