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이기주 언어의 온도 시간의 공백 메우기

p5kk1492 2024. 12. 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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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란 희망의 다른 이름이란 말,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는 말에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란 표현을 나는 사용하곤 했다. 내가 20대에는 살아가는 데 있어 기다리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를테면, 지인 혹은 연인을 만나기 전에 기다림은 조금 길어져도 공백을 나름대로 채운다. 보통 나는 책을 읽곤 했지만, 요즘은 유튜브를 보긴 한다. 공백을 메우는 데 있어 딱히 불편함이 없던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내가 꿈을 갖고 살 때,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해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내 머릿속으로 내 미래에 대해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유쾌함을 주도했던 것도, 나는 나자신에게 나름의 기대감을 가졌던데에서 온 자존감있는 행동었다. 

 

기대감이 없는 미래, 그것은 디스토피아가 머리를 지배하는 삶이다. 기다림이 없다. 그저 죽어있는 시간이다. 딱히 시간이 흐르건, 어떤 사람을 만나건 큰 의미가 없다. 그저 하루 한끼 떼우듯, 삶을 떼운다. 기다려야하는 물리적 상황이 무의미하다. 이미 희망이 없기 때문에 과거가 현재고, 현재가 미래고, 전부 의미없는 죽은 시간이다. 그래서 기다림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나는 이해가 된다. 희망없는 기다림은 죽음이고 사실상 기다린다라는 행위 자체가 소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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