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the Draftsman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but I still have written that shit.

일상 끄적이기

아재론 - 인간관계, 라면과 바리깡

p5kk1492 2025. 2. 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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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강타령이나 운동루틴과는 결이 맞지 않게 컵라면을 즐겨먹고 있다. 참, 어떻게든 식비를 아끼는 방법은 컵라면으로 일단 베이스로 잡는다. 그리고 요즘따라 따뜻한 국물이 땡기기도 하고해서 저렴하고 간편한 컵라면을 즐긴다. 이 나이에 쉰내나는 아재답게 요리를 못한다. 된장찌개를 내손으로 끓일 줄 안다면, 아마 컵라면을 먹는 빈도가 줄겠지. 허나 내가 사는 곳이 내집이 아니기에 주방에 오래 상주하고 싶지 않다. 그냥 방안에 있거나 나가서 컵라면을 먹는다.

 

라면을 혼자 먹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인간들과 먹는 만찬보다 혼자 편하게 먹는 라면이 미미다. 미미는 요리왕 비룡에서 음식을 먹고 나서 최고로 맛있을 때, 요란한 효과와 함께 나오는 표현이다. 사실 라면이 비용절감뿐 아니라, 신물난 인간관계에 대한 자기위로이기도 하다. 내가 인간관계에 서툴고 불편한 아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내 주변에 사람들과 척을 지는게,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 내가 주변부에서 멀어지는게 맞지, 눈치가 없는 아재면 적어도 기계적으로 학습이라도 해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게 맞다. 혼자 눈치 안보고 먹는 천원짜리 육개장 사발면이 내 친구다.

 

 

이번에 쿠방에서 19,900원 짜리 전기바리깡, 전동이발기를 구매했다. 구매사유는 사실 그냥 짜증나서 사버렸다. 2만원짜리 전기바리깡은 좀 너무했나, 5만원대의 제품도 있었는데 그냥 쓰다가 망가지면 버릴 용도로 구매했다. 예전에 호주살던 시절에 전기바리깡을 애용했다. 어차피 사람들 시선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호주에서, 머리에 신경쓰기도 귀찮았다. 그렇다고 기르기엔 지저분하니, 5미리로 박박 밀고 다녔다. 수염은 나뒀더니, 약간 프로필이 머그샷에 찍힌 테러리스트 느낌이었다. 뭐 아시안 느낌 안나고 좋았지.

 

사실 한국에서는 수염도 매일 깔끔하게 밀고, 한달에 한번 미용실에서 머리를 정리하는게 맞다. 깔끔한 인상이 대인관계에서 그냥 투명인간이 되는데, 여기서 수염이라도 밀지 않고 다니면 말이 나온다. 호주에서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던 수염을, 우연하게 한인을 만났을 때 바로 말이 나오더라. 전기바리깡을 구매한 것은 이제 인간관계에 대한 내려놓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중에서도 어쩌면 실낱같은 연애에 대한 끈을, 이제 5미리로 머리를 밀어버리면 끊어버리는 셈이다. 12년이나 혼자고, 곧 40이 코앞인데 슬슬 포기할떄도 된거 같다. 20대 시절에나 대학생 신분으로 광대짓 한 덕에 얻었던 연애경험이, 40을 앞둔 아재에게는 정치경제사회적인 위치에서는 큰 메리트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Q 처럼 정신승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비하적이지만 나를 돌아볼 것인가. 나는 후자를 차라리 택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고 불편함을 느끼는 아재가 되어간다. 사실 젊은 시절에는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거나 주더라도,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계속 실존적 행위를 반복했었다. 보통은 신선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즐거움이 있다. 허나 이제 내가 변했다. 인간관계란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으며 그저그런 관계도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냥 다 불편해져간다. 내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도 발버둥쳐도, 내 안에 꼰대가 자라나는 것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라면과 바리깡, 이게 내 인간관계에 대한 불편함에 대한 편협한 답변이다.

 

퇴물 광대의 결론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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