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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능성이란, 나에게 스스로 가지는 기대감일 수 있다. 저자의 예시에서는 담임선생님과 같이 타자가 보내주는 기대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갖는 나에 대한 확신 만큼, 타자가 전해주는 기대감은 나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는 대체로 고등학교 학창시절이나, 내가 대학을 중퇴하긴 전의 서사에서는 많이 등장했다.
나에 대한 가능성이 대내외적으로 상실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머리를 다친 인간이란 뒷말을 퇴사한 동료로부터 들었을 때, 마음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 귓말을 전했던 옛 동료도 나에게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려고 했으니, 결국 내가 얼마나 병신같은 인간으로 보였는지 알게 되었다. 머리를 다친게 소문이 아니라, 내가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가능성을 점쳐볼 만한 인간일까? 분명한 것은 20대의 나보다는 모든 가능성의 경로가 많이 줄어들어 있다. 그때는 마치 고속도로를 진입할 것만 같은 가능성의 구간이 기다리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정글숲에 진입한 느낌이다.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잘 들지 않지만, 일단 내 손에 마체테라는 가능성을 가리는 장애물을 제거할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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