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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맡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 이별의 계절이다
감상
마지막에 구절에 가을에 대해 저자가 부여한 의미가 느껴진다. 마치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나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이 연상된다. 엘리엇이나 저자 모두 나름의 계절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토대로 시적인 표현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이런 서사가 담긴 시적 표현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아직도 학창시절 시를 공부하던 버릇이 감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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