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이기주 언어의 온도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여 - 찜

p5kk1492 2024. 12. 3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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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나는 길치라서 요즘도 아는 곳을 갈때도 항상 지도앱을 켜고 확인한다. 예상시간이나 버스경로를 일단 파악을 하고 간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가끔 길을 잃었다. 괜히 딴길로 걷고 싶을 때, 한창 헤매다가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잘못 들어선 길에서 자그마한 공원을 마주했었다. 작지만 옹골지게 구성된 공원을 두리번 거리다가, 아마 후다닥 목적지를 향했던 추억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이 적어도 대한민국이 정해놓은 표준 궤도를 이탈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성적표는 한 B 나 C 사이 정도는 유지하면서 정규노선을 지키겠지, 저공비행정도 하겠지 하며. 그러다가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서울생활을 포기하면서부터 약간 노선을 이탈했다. 내 입장에서는 샛길로 빠진 셈이다. 그렇게 택한 길이 이민시도였지만 실패로 끝났고, 결국 완벽한 노선이탈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내 선택으로 인해 보지 못할 뻔한 세상을 마주했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가더라도 어두운 한강과 밝은 빛의 푸른 한강의 다름을 보는 것도 난 좋았다. 그런데, 한국이란 길바닥에서 주저앉았다면 못봤을 호주나 캐나다의 풍경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또다른 시각을 주었다. 아마 내가 이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게 된 우연도, 불편감 없이 보답하듯 알려주는 것도 이 때 받은 추억보정이 한몫한다.

 

인생은 정규노선대로 사는 맛도 있다고 본다. 나는 그 맛을 느끼고 싶었던, 당연히 누릴줄 알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박봉이더라도 대졸취업자에다 결혼에 자식 등등 말이다. 지금의 나는 오롯이 최저임금 노동에 천착해 살아가는, 캥거루 인간이지만 나름 자세히 볼 줄 아는 인간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달리보이는 곳, 내가 지금 작은 제주에 있어도 제주인, 한국인 너머 이주민 외국인 등이 공존하는 세계관에 내 던져진 존재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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