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방구석 철학자의 밤
Basement Philosopher’s Night
주제: 행복과 불행
살다보면, 불교의 가르침 "인생은 고통이다." 라는 명제를 자 곱씹게 된다. 인생 전반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어쩌다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 나는 "달콤한 인생", Bittersweet Life 란 영화제목을 떠올리곤 한다. 씁쓰름한 인생에서, 가끔씩은 달콤한 행복을 느끼는 삶, 그것이 인생이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행복만 주제로 다루려다, 불행도 함께 철학적으로 사유해보고자 결정했다. 과연 행복과 불행이란 두 가지 개념을 두고 어떤 아포리즘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철학적 질문이 제시될지 살펴보자.
행복과 불행에 관한 철학자들의 아포리즘 5가지
1.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 “행복은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
• “Happiness depends upon ourselves.”
행복의 감정은 주관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소한 부분에서 행복하다 여긴다면, 행복해 질 수 있겠다. 이부분은 철학적인 명제이고, 사실 진화심리학에선 행복이란 것도 일종의 신체적 반응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위의 명제에 오류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래도 행복의 기준을 좀 낮출 수 있다면, 욕심을 버리는 과정을 통해 행복의 역치를 낮출 필요는 있다고 본다.
2.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 “행복은 부정적인 것이고, 불행은 긍정적인 것이다.”
• “Happiness is a negative state; suffering is a positive one.”
행복이란 감정을 통해, 이것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우릴 불행하게 만든다. 반면 불행은 그 강도를 깊게 체험할 수록, 의외로 왠만한 불행이 찾아와도 담담해진다. 그래서 아마 두 개념을 비틀어서 아포리즘을 남긴 쇼페하우어의 주장도 나름 수긍해볼만 하다.
3. 니체 (Friedrich Nietzsche)
• “행복이란 극복의 감정이다.”
• “Happiness is the feeling that power increases—that resistance is being overcome.”
니체는 자기극복이란 개념에 천착한 철학자라 봐도 무방하다. 나의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내 삶의 불행을 극복하는 것이 결국 행복이자,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은 셈이다. 이렇게되면,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4.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 “자신만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 “Those only are happy who have their minds fixed on some object other than their own happiness.”
자유론에서 결국 자유의 범위는, 타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누리를 최대치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도, 타인과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있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행복이라 할 수 없다. 타인에게 불행이 전이되면, 결국 나의 행복도 불행으로 치환된다.
5. 세네카 (Seneca)
•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사람이다.”
• “The happiest man is he who is self-sufficient.”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나는 요즘 이 말에 참 공감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고, 의지하고 감정을 고유하고자 하는 강점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자연스럽다. 다만, 이 감정을 이겨내고 나 홀로 자립할 수 있는 인간은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 다가온다면 반갑게 대하고, 나홀로 서야할 순간에는 오롯이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철학적 질문
1. 행복이란 단순한 감정인가, 아니면 삶의 목표인가?
• Is happiness merely an emotion, or is it the ultimate goal of life?
행복이 삶의 목표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행복은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차라리 덜 불행한 삶을 추구하자. 인생은 고통이고, 불행이라는 상수가 변칙적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자주 찾아오는 불행을 견디어 내는 삶은 살되, 가끔씩 찾아와주는 행복을 반겨자. 목표는 고통에 초연해지는 것
2. 불행이 없다면 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까?
• Can happiness be defined without the existence of suffering?
빛과 어둠과 같이, 불행이 짙을 수록 행복이란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인지할 수 있다.
3. 행복은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
• Is happiness a personal matter or a social construct?
사회가 인간에게 덜 불행한 구조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행복이란 감정이나 정서는 주관적이어서 직접적으로 개개인에게 행복함을 주긴 어렵다. 행복추구권이란 권리는 말그대로 법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적 기반일 뿐이다. 그것이 갖춰줘도 인간은 불행하다. 대한민국의 자살률과 출산율을 보면, 사회가 제시하는 행복추구에 대한 권리보장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있는지 알 수 있다.
“Fortuna fortes adiuvat.”
“운명은 용감한 자를 돕는다.”
불행이란 운명 앞에서 우린 때론 비겁해질 수 있다. 비겁한게 나쁜게 아니다. 다만 언젠가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불행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언젠가 용감함을 발휘한다. 그 용기가 로마의 센츄리온, 백인대장이 게르만족과 맞서 싸우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침대에 누워있던 내가 일어나 방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것도 용기다. 사소한 곳에서 발휘된 용기가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고, 불행을 덜 불행하다 느끼게 해준다. 그게 행복이고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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