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구절은 지극히 종교적이다. 그럼에도 챗지피티가 보편적인, 그리고 철학적 질문을 잘 뽑아줘서 감탄했다. 막상 답변해준 질문을 보면, 별거 아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내용을 보고 있으면, 보편적인 메시지로 치환하는게 상당히 어렵다. 왠지 종교적인 구절이란 틀 안에서 해당 메시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성경 구절 (Mark 16:15, NIV)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철학적 질문 (Philosophical Question)
“만약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전할 책임이 있는가?”
“If there were a universal truth that should be shared with all people, what would it be, and are we responsible for sharing it?”
Gospel은 Good News 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소식이 아닌, 지극히 종교적 메시지의 전파를 뜻하기 때문에 이 틀안에서 난 갇혀 있었다. 여기서 철학적인 질문으로 보편적 진리의 존재에 대한 부분으로 Gospel 을 치환했다. 거기에 철학적으로 '보편적 진리'가 존재했을 때, 전파의 책임이 있는지까지 묻고 있다. 우리는 진리를 전할 책임이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진리가 존재했고, 이를 깨달은 자들은 결국 자신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곤 했다.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들은 글을 남기거나, 행동으로서 진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편적인 진리를 전하기도 했고, 때론 급진적인 사상을 전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지 않은 경우, 세상에 진리에 반하는 내용을 통해 대중을 현혹하기 했다. 이 모든 것이 보편적 진리란 이름으로 포장됐기에, 우리는 사실 보편적 진리에 궁극적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진리를 접했을 때, 이것이 보편적인 진리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의식이 있을까? 우리는 현실이란 시대상에 살아가는 대중들 하나다. 아무리 우리가 역사와 철학사의 흐름을 배우는 지식인 계층이라 상정해도, 잘못된 진리에 빠져서 전파하는 유형의 인간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전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 진리들 중에서 오랜 기간 전해지고 읽혀지는 철학서적, 종교경전 등은 아무래도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안에도 분면 그들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포용은 해도 완전무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진리는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진리를 전하라고 말라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전할 책임은, 본인의 선택이라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전달 방법은 내 행동으로, 라고 본다. 뭔가 진리를 전하고자 할때, 논리적으로 무장해서 말로 설득하는 과정을 택한다. 나는 그 전략보다는 내가 가진 진리나 가치관에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게 맞다고 본다. 내 방법은 전파력이 매우 낮다. 아마 평생에 걸쳐 한명에게 전달되도 다행일 수준이다.
그 한명이 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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