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선악의 저편

p5kk1492 2024. 6. 1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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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은 니체의 유명한 문구 심연에 대한 구절이 담긴 책의 제목이다. 선악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아포리즘, 명언처럼 묶어 놓은 저서인데, 심연에 대한 유명한 아포리즘은 다음과 같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Beware that, when fighting monsters, you yourself do not become a monster... for when you gaze long into the abyss. The abyss gazes also into you.

 

해당 구절을 통해 젠더갈등의 중심에 있던 조던피터슨은 내면의 악에 대해 깨닫고, 스스로 통제 가능한 괴물이 되라고 조언한다. 선을 위해 자신의 악을 인정하고,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선을 지키려면 괴물같은 악의 본성을 조절하고 통제할 줄 아는 자아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어록을 정리하면서 에리히프롬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인간은 선함과 악함을 가지고 있으며, 성숙하면서 선함에 이르르고, 스스로 악행을 따르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라 말한다. 그의 어록에는 인간 본성은 악에 가까울 정도로 폭력적이고, 어처구니 없을만큼 악행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허나 그는 성숙함의 과정을 통해 인간 스스로가 선함의 본성을 깨우칠 수 있는 진보를 믿었다.

 

필립 짐바르도의 어록을 통해서도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이르면 악행에 가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깨진유리창의 이론에서 결국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분산되면 악행을 저지르는 데 참여하게 됨을 확인한 바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악함이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악의 평범성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 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괴물과 마주하는 대상이 우리 자신, 내면의 괴물을 상상하지 못한다. 악인은 우리 이야기가 아니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스스로 선함의 대열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악인이 된 사람들이나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들에 대해 쉽게 분노하지만, 자신이 악인이 되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면의 악함을 인정하고,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폭력으로 가득한 인간의 역사 안에서 우리도 그 폭력의 주체로 살게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필리 짐바르도의 말처럼 폭력을 저지를 상황에 처하거나 책임이 분산되면, 우리는 가담자가 될 수 있다. 게빈 드 베커의 말처럼 수많은 폭력에는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며, 나 자신도 결국 스스로 저지른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 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 내면의 본성, 괴물을 인정하지 않으면 괴물이 된 나자신의 악한 본성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악의 평범성을 다시 한번 영화적인 연출로 다룬 존 오브 인터레스트, 나치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놓치는 부분은 평범함이다. 우리가 나치를 악으로 규정하지만, 그들의 온화로운 가정적인 장면을 그들을 비판하는 장치로 보는 것에서 끝나면 안된다. 누군가는 나치의 평범한 일상에 혀를 하겠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보면서 내면의 악행을 들여다 봐야 함을 교훈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