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인생은 마치 리니지에 내던져진 존재, feat.존재와 시간

p5kk1492 2024. 6. 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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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라디오를 염두해 둔 글이라서 약간 의식의 흐름과 같은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오늘 22일, 오전에 예약해둔 치과 진료를 받았다. 스케일링을 받으면서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스케일링 받는 것도 손에 힘을 주며 참는 내 모습이 좀 웃겼다. 내가 만약에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괜히 독립운동가 도와주다 고문당하기 전에 아는거 다 불어버리는 변절자였을 것이다. 손톱이 뽑히기도 전에 겁나게 아플까봐 바로 협조하는 겁쟁이랄까. 아무튼 치과진료의 결론은, 제발 치실좀 쓰면서 깨끗잊좀 살어라 다. 앞으로 5주 더 잇몸치료 받고, 썩어가는 사랑니도 발치할 퀘스트가 잡혔다. 동의도 안했는데, 정신차려보니 예약이 되었네. 해야지 뭐.

 

전날 회식이 있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다. 1+1을 고른 음료수 색이 마치, 예전에 리니지에서 샀던 포션같았다. 체력을 체우던 빨갱이와 마나가 차는 수치를 늘려주는 파랭이처럼, 괜히 또 인생은 리니지라는 평소 개똥철학이 발동했다.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인생은 마치 리니지같다고 하곤 한다. 내가 어렸을때 리니지를 했던 추억이 있다보니 그런 비유를 종종 하곤 한다.

 

리니지라는 게임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게임이라는 공간도 사람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이라 현실의 일정 부분을 반영한다. 물론 현실의 룰과는 조금 다르다. 현실보다 좀더 괜찮은 점도 있고, 더 잔인한 부분도 있다. 사실 부조리한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리니지 쪽이 더 크다. 세상의 부조리는 누군가는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굉장히 어두운 세계도 있다. 그러나 리니지는 유저 모두에게 동등한 잔혹함을 가르쳐주는 부분이 있다.

 

리니지를 하게 되면 흔히 접하는 경구가 억울하면 강해져라 라는 말이다. 이걸 자기 아이디위에 달고다니는 유저들이 있었다. 말그대로 약육강식이 정당화되는, 그것이 답인 세상이다. 게임이니까 당연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게임을 즐기면서도 그런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도 사람들과 싸우는 상황보다 그냥 몬스터나 잡으면서 소소하게 내 장비를 바꾸면서 즐겼다. 그러다가 길드에 들어가서 친목질도 좀 하고 그런저런 게임유저로 살았다. 

 

게임 내에서도 경쟁을 포기한 사람은 소시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리니지란 게임은 강한 사람들이 약자들에게 횡포를 부려도 정당한 행위다. 물론 유저를 죽이면 패널티야 있지만, 패널티를 감수하고 악행을 저지를 권리가 있는게 게임 속 세상이다. 리니지란 게임이 더 큰 위세를 떨친 이유 중 하나는  게임의 경제적 가치가 현실가치로 치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데나가 현금이 된다. 이게 아마 리니지란 세계가 더 짐승들이 날뛰는 세계로 만들어 줬다.

 

리니지에서 즐겁게 살다가 사칭사기, 아는 유저인척 속여서 가진걸 다잃고 난 뒤에는 얼마 안가 접게 되었다. 그뒤로 가끔 즐겜하듯 몇번이나 더 리니지를 기웃거렸지만, 이젠 그때의 리니지가 아니라서 게임에 대한 추억만 남아있다. 살면서 뭔가 부조리함을 느끼거나, 마치 혼자 레벨업하다가 잘 안풀리는 느낌이 들면 인생은 리니지다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인생은 마치 리니지란 게임의 시작점처럼,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철학적 용어로 세계-내-존재란 표현을 썼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냥 세상이라는 공간에 던져진 상태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채로 삶을 이어나간다. 리니지에서는 물론 단순하지만, 현실에서는 좀더 복잡하겠다. 하이데거는 이걸 좀더 철학적인, 존재론적 물음으로 연결짓기 때문에 읽을 수 없는 책하나를 나에게 던져줬다. 리니지로 인생을 해석하는 나에게, 하이데거는 600쪽의 책을 이해못하는 비 철학적인 존재, 존재적 물음을 할 수 없는 현존재란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는 현존재라 하이데거는 명명했다. 인간이라는 표현에는 생물학적인, 혹은 사회적 약속과 개념이 담겨있어 철학적 개념의 용어를 만들었다. 하이데거는 철학자들 중에서도 언어적 표현을 달리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풀어 말하는 학자였다. 그래서 내가 존재와시간을 다시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한다. 어짜피 600쪽짜리 번역본을 읽어봐야, 읽은 척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서다. 번역하신 이기상 교수의 해설서를 따로 읽어서 건진게, 현존재와 세계-내-존재라는 용어 두개였다.

 

하이데거의 존재와시간은 실존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존주의 철학은 거기에 묶이는 사람들 중 자신의 사상은 실존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카뮈도 그랬고, 하이데거도 그중 하나다. 하이데거의 책을 읽은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를 통해 실존주의를 얘기할 때도, 하이데거는 내 책에 대한 오독이라고 말했을 만큼 사상에 대한 분류는 애매해 보이긴 하다. 본인이 아니라고 하고, 남의 책이 나에 대한 오독이라고 하니 말이다.

 

치과진료에서 리니지까지 왔다가 결국 하이데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남긴다는게 창피하긴 하지만, 웃기니까. 웃기지 않은가. 인생을 리니지로 비유하는 린저씨가, 하이데거를 아는척 하는게 말이다. 학력은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고졸인데다가, 글을 쓰는 시점이 치과진료를 받고 쿠팡에서 칫솔형 치실을 구매한 인간의 개똥철학이 아마 웃길 거다. 

 

우스워 지는 것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아마 이런 부끄러운 의식의 흐름도 기록에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문제가 될만한 이야기를 남기면 지우거나 비공개로 돌리겠지만, 이정도는 뭐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튜브에도 녹음할 거리는 하나정도 생기겠다는 생각에 좀 신이나서 적은 점도 있다. 현존재의 존재론적 물음은 내 현생에서는 힘들겠지만, 내 인생을 계속 곱씹으면서 잡생각은 잘 할 자신이 있다. 매일 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