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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p5kk1492 2024. 10. 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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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이 한국의 작가인 한강이 받았다. 그래서 이책을 읽기로 한 계기인데, 내용이 43사건을 다룬점도 한 몫 했다. 상을 받은 포인트도 역사적 트라우마를 시와 산문으로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온다가 유명하고 주목받고 있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가 제주인이면서 한편으로는 항상 역사전공을 전공하다 중퇴한 사람으로 43사건에 대해서는 항상 부족한 감정이 있다. 아무리 사건을 전체를 학술적으로 때론 문학적으로 찾아봐도 뭔가 공허함이나 지적 감정적 허기짐이 있다. 그래서 읽기로 마음먹었고, 까놓고 노벨상 받았다고 하니까 나도 숟가락 얻는거 맞다.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한강작가의 작품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모른다. 일단 노벨문학상 받기 전에, 기사를 찾다보니 채식주의자로 한때 이슈가 되었던 부분을 얼핏 접한 기억이 난다. 당연히 읽을 스타일의 책이 아니란 생각이었다. 일단 지금 이 책을 읽다보니, 결국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사건 모두 죽음에 충돌한 수많은 생명들을 알게된 작가의 그 감정을 소설로, 하나의 시와 산문으로 이뤄진 서사로 작품을 만들어냈음을 느꼈다.

 

소설은 경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인선을 통해 4.3사건을 다루던 이야기를 회상하며 서사가 펼쳐진다. 4.3사건을 다루는 작품들은 사건의 완전히 몰입되거나 작품자체가 사건에 경도되어서 실상을 알리기 위한 작품들로 주를 이룬다. 사실 4.3의 경우 사건을 알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목표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허나 이 작품은 경하와 인선이 느끼는 개인적인 서사와 4.3이라는 사건이 나름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나는 제주인이고, 4.3에 대한 배경지식이 평균이상이라는 부분은 감안해야 한다.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던 인선의 마지막 영화는 '아버지의 역사에 부치는 영상 시'라는 영화제 기획자의 우호적인 촌평을 부제처럼 매달고 상영되었는데, 지금처럼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인선은 그 말을 반박했다. 아버지를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영상 시도 아니에요. 놀란 듯한 진행자가 웃으며 매끄럽게 물었다. 그럼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요? 그 질문에 그녀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영화를 그만둔 이유를 짐작하려 할 때마다 그날이 떠올랐다. 당혹과 호기심과 냉담함이 섞인 진행자의 태도와 객석의 어리둥절한 침묵, 진실만 말해야 하는 저주를 받은 듯 천천히 말을 이어가던 인선의 얼굴이.

 

이 길고 긴 구절에서 나는 인선을 통해 한강 작가가 보였다. 작별하지 않는다란 소설은 4.3사건을 조명하기 위함도 인가, 경하를 통해 인선이 겪은 가정사에 대한 헌사인가, 아니면 작가의 시적 재능과 산문을 써나가는 솜씨를 보여주기 위한 기술적 작품인가. 한강 작가는 상을 받으면서 당연 기쁨 감정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강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썼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 심정을 인선이 겪는 상황을 통해 대리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 표현이 참 시적이긴 하다. 제목 자체가 시적 허용이란 생각이 든다. 한강이란 작가의 시적재능 까지 번역이 되었을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일단 평가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시와 산문으로 잘 풀어냈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하니 아마 어느정도 작가의 재능이 제대로 평가가 되엇나 보다.

 

우리는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 그리고 인선의 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선의 죽음을 목도한 경하를 통해 이미 죽음을 맞은 상대에 대해 작별하지 않는 자세를 볼 수 있다. 사실 위의 세 종류의 이별은, 작별하지 않는다. 아니 작별할 수가 없다. 부러진 성냥을 부여잡고 다시 불꽃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희생자들을, 인선을 사라지지 않게끔 만들어준다. 날개가 부러진 새를 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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