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박경리, 4부 까치설 <확신>

p5kk1492 2024. 10. 2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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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기면 참 홀가분하다

 

확신

 

씁쓸한 삶의 본질과는 상

관치 않고

배고픈 생명들 팔자소관

내 알 바 아니라

연민 따위는 값싼 감상이

거니

애달픈 여정이란 못난 

의 넋두리

상처의 아픔 같은 것 느

껴 보기나 했는가

 

그런데도 

시인들이 너무 많다

머리띠 두른 운동가도 더

무 많다

거룩하게 설교하게 성직

자도 너무 많다

편리를 추구하는 발명가

도 많고

 

많은 것을 예로 들자면

끝도 한도 없는 시절이지

그중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

확고부동하게 옳다고 우

기는 사람 참 많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늘

어나게 되고

사람은

차츰 보잘것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의 뭇 생명들이

부지기수

몰살되는 지경에 이르렀

땅도 죽이고 물도 죽이고

공기도 죽이고

 

연약한 생물의 하나인 사

그 순환에는 다를 것이 

없겠는데

진정 옳았다면 진작부터

세상은 낙원이 되었을 것

이 아닌가

 

옳다는 확신이 죽음을 부

르고 있다

일본의 남경대학살이 그

러했고

나치스의 가스실이 그러

했고

스탈린의 숙청이 그러했

중동의 불꽃은 모두 다

옳다는 확신 때문에 타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땅을 갈고 물과 대기를

정화하고

불사르어 몸 데우고 밥을

지어

대지에 입 맞추며

겸손하게 감사하는 의식

이야말로

옳고 그르고가 없는 본성

의 세계가 아닐까

 

감상

내가 옳다는 확신이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종교가 옳다는 확신, 나치즘이 옳다는 확신, 사회주의가 옳다는 확신, 중동의 이슬람과 유대교가 각자 서로 옳다는 확신 속에서 현실세계가 지옥되어간다.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감사하며 산다는 것, 어쩌면 모두의 옳음, 확신보다 자연스러운 본성의 세계로 회귀함을, 글쓴이는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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