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마스터2기로 선정되어서 좋은 점은, 읽지 않을 법한 책도 접하거니와 또 그 책이 참 좋은 울림을 주는 의외성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소설맹에게는 그리 추천하기 어려운, 감동받을 수 있는 소재의 장르지만 접근성이 좀 떨어 질 수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LP 라는 단어가 이 책을 계속 관통하는, 내가 알 수 없는 노래들이 서사 중간에 포인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줄거리 자체는 무난하고, 신선하진 않아도 드라마장르의 연출을 잘 그리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정원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을 만큼 책임감을 갖게 한 동생 정안의 죽음, 이로 인해 그가 다시 죽을 마음으로 LP가게를 차리는 것이 소설의 시작이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계획은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LP를 다 처분하고 삶을 마무리하자 였다. 뻔하지만 그 계획이 실현될리 없지만.
애초에 장사치의 마음으로 가게를 열지 않았기에, 의도치 않게 LP가게와 그 주인 정원에게 인간적으로 관계 맺음을 형성하는 손님이자 친구들이 생긴다. 거의 가족과도 같은 느낌의 사람들, 맘에 든 사람에게 초면 반말을 던저는 원석, LP가게에 끌려 일을 지원한 미래, 변호사 다림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서사로 정원을 알게되고 연을 맺는다. 죽음을 계획한 정원은 워낙 바쁘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살을 생각할 시간이 없어진다.
정원은 원래 자살을 자주 생각하던 사람이었기에, 해밍웨이처럼 자신에게 자살유전자가 있나 생각할 정도였다. 그 생각을 바꾼게 부모님의 사망과 정안의 존재였고, 정안마저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다시 그의 자살계획이 준비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계획한 그의 행동이 오히려 살아있게 해준 점이다. 난 이 소설에서 이거 하나만 건져냈다.
나도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긴 추억이 있다. 추억이란 표현은 내가 겪은 사건이니 마음대로 정의내린다. 당시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그 이후로 자살시도보다 더 긴 고통스런 우울감에 젖은 기간도 지나다 보니 참 역설적인 생각이 들더라. 어떤 들뜬 시간보다 적당히 우울한게 낫고, 올해처럼 내가 가진 적당한 감정기복으로 해악을 즐기는 나 자신의 삶이 참 좋다란 점을 느낀다.
지독하게 괴로운 사건을 겪은 뒤 주변을 통해, 나자신의 상황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치유가 되는게 이 소설이 주는 맥락에 닿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가 자살을 생각하고, 생각했던, 그리고 이제는 그러지 않는 정원을 보며 뭔가 과몰입 됐을지도 모르겠다.
줄거리는 사실 좀더 깊이가 있다. 정원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연들도 LP가게에 어울린만한 가슴이 조금은 찌릿? 저릿 아니면 덤덤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의 서사가 있다. 이것까지 다 다루기엔 좀 대충읽어서 이 내용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선물로 남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유일하게 아는 노래는 AC/DC 의 Highway to hell 인데, 다행히 중요한 장치였다. 음악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참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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