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따르던 12제자이야기, 12라는 숫자는 고대의 역사에서부터 오늘날까지도 무엇인가 특정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동서고금을 넘어 숫자에 담긴 오묘한 메시지나 힌트가 있는 느낌이다. 물론 이에 대학 학술적 해석은 명징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알고 있지는 않다.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다. 다만 분명 이 12란 숫자는 우연성은 아니며 분명한 의미가 있고, 열두 제자 모두 예수의 만남과 그의 죽음, 그리고 부활의 과정에서 극적인 삶을 살다 떠났다.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out to fish for people."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Matthew 4:19-20 NIV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예수의 부름에 한달음에 제자가 된다. 어부란 직업은 자신 혹은 가족 소유의 배를 통해 나름의 부유하게 지내는 삶이다. 생업을 버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나름의 권리를 포기하고 옳은 길에 뛰어들었다. 베드로는 여러방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예수의 뜻을 잘 따르기도, 때론 혼이나기도 그리고 세번 닭이 울때 예수를 모른다 하며 눈물을 흘리며 비겁함을 자책한다.
베드로 뿐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형으로 인해 다들 겁을 먹고 뿔뿔히 흩어진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의 부활사건을 이후로 열렬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예수가 승천 한뒤에 그들은 대부분이 순교했다. 순교의 수준도 극단적인 처형을 당한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한다. 예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해도 그들이 죽음을, 그것도 치욕과 지극히 고통스러운 형별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간혹 생존설, 대리인 등과 같은 소수설이 있지만 말이다. 허나 부활은 대체로 신화적 요소라고 여긴다. 부활은 사실로서, 역사적 사건으로서,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허나 부활을 이후로, 이를 목격한 사람들과 주변인물들의 행동변화 즉 맥락적인 판단에서는 분명 무엇인가 극적인 표징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그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같은 이분법적인 구원론에 미쳐서 광신도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가르침이 옳았다음 서사의 완결을 보고,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인물이란 확신이 신념으로, 그 신념이 그리스도교 전파의 선봉장이 되었다고 본다. 종교인이 아닌, 비종교인 입장에서 순교가 어쩔때는 목숨을 버려가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행위라 정체성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종교에 치우쳐서 자아를 상실한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세례이전에는 내가 이성과 철학, 지적소양을 통해 내 나름의 가치관을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가진 지적소양으로 만든 이성적 기둥으론 버틸 수 없었다. 좀더 간결하고 빈자에게도 메시지가 쉽게 전달되는 종교에 의탁하고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영역이 종교를 믿느냐 마냐라고 본다.
사람 낚는 어부, 나는 내 자신의 자아를 의탁을 기둥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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