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22/01/10,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글쓰기

p5kk1492 2022. 1. 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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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마침 밀리의 서재, 문예출판사 버전이 있어서 돈 들이지 않고 바로 나만의 도서관 밀리로 이 책을 접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사실 그냥 딱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정도가 전부다. 예전에 열린 책들 오픈 파트너를 플렉스 하면서 약 9년 전에 사두었던 전자책 목록에 그녀의 작품이 있었다. 물론 읽지는 않았다.

담배를 태우는 버지니아 울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에세이를 읽어도 될까라는 물음이 들어서 조심스럽다. 여성으로서 작가가 여성 작가들에게 조언하는 이 책은, 1970년대 여성문학가와 여성주의자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한다. 문학 비평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는 이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이, 남성인 내가, 남성성을 갖고 살아가는 내가 과연 이 책에 대해 감히 감상평을 남길 수 있을까

많은 작가와 작품이 인용되면서, 읽다가 메모하고 구글링 하면서 작가와 작품을 검색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했다. 그리고 당대의 여성주의와 여성들이 겪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여성주의자가 아니라 인도주의자라고 했다는 점도 작품 해설에 나온다. 다만, 1970년대 여성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여성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계기로 여성주의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는 과정을 가져보고자 한다.

1. 감상평, 그리고 구절

도입부에서 여성은 대학의 잔디밭에 들어가거나 도서관 출입이 되지 않는 구절을 통해서 당대의 여성이 갖는 사회적 지위, 특히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는 점을 유추해본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고모로부터 받는 유산, 매년 500파운드의 가치에 대해 찾아봤다. 2022년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환율로 5천500만 원, 한 달에 450만 원씩 수입을 얻는 셈이다. 2020년 영국의 중위소득이 4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점이, 남녀를 불문하고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만이라도 보장된다면 글쓰기를 하고 싶긴 하다.

500파운드가 얼마야 ㅅㅂ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동물은 여러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세요? ...(중략)... 여자가 아니라는 점 말고 다른 자격은 아무것도 없는 남자들까지 성-여기서는 여성-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은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여성에 대해서 마치 동물을 다루듯이 이리저리 분석하고 마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설명하는 남자들에 대해 분개하면서 새뮤어 버틀러의 "현명한 남자는 절대로 여성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는 말로 당대와 더불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성에 대한 분석에 대해 비판한다. 동의한다. 오늘날에도 여성에 육체적, 정신적 열등성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구별하는 것과 차별하는 것은 다르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여성은 남자의 모습을 실제보다 두 배쯤 크게 비추는 신비하고 달콤한 능력이 있는 거울 역할을
해왔어요. 여성의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대지는 여전히 늪과 밀림뿐이었을 뿐"

"돈을 받지 않을 때는 하찮게 여기는 일도 돈을 받는 순간 고귀한 일이 돼요."


여성성이 남성성을 극대화 시켜주는, 어쩌면 상호보완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그리고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집이라는 요지에 맞게 재산권, 참정권이 인정되는 사회적 흐름보다도 경제적인 여유를 강조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극찬한 오만과 편견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샬롯 브론데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데의 <폭풍의 언덕> 등을 언급하면서 칭찬하는 점도 주목했다. 특히 오만과 편견은 찬사를, 제인 에어보다는 폭풍의 언덕을 더 높게 칭찬하는 등이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당대의 여성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에 대해서 굉장히 극찬한다.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 보다 짧고 압축된 내용이어야 하며, 반드시 긴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꾸준히 읽지 못하더라도 문제없게끔 구성되어야 해요...(중략)... 남성의 경우 두뇌의 여성적 부분이 반드시 기능해야 하며, 여성 역시 자기 안의 남성과 교류해야 해요."


여성 작가로서 글쓰기를 할 때 남성과는 다른 차별성,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양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 작가로서 아무래도 엄격해 보일 정도로 조언을 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점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조언이 아닌가 한다.

"제가 여러분께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현실성과 함께 살아가라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라고 당부하는 것과 같아요"

"'자기만의 방' 물질적 독립된 공간만이 아닌, 남성 중심의 문학에서 독립된 여성문학 더 나아가 문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외부조건에서 자유로운 풍요롭고 균형 잡힌 정신...(중략)... 핍박받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마저 버리고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상상력의 발목을 잡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내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진정한 '자기만의 방'이니까."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으로 상징되는, 여성이 경제적 물질적 독립과 더불어 남성 중심의 문학 속에서 여성의 글쓰기를 오롯이 지켜내야 한다는 조언으로 마무리된다.

2. 과거 글쓰기에 대한 여성의 시련. 오늘날, 글쓰는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불합리함과 모순


- 교수가 여성의 열등함을 지나치다 싶게 강조할 때 진짜 관심사는 여성의 열등함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일 겁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더없이 진귀한 보석이니까 다소 격하게, 그리고 힘주어 강조하면서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 남성이든 여성이든(나는 보행로에서 어깨를 밀치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삶은 힘들고, 어렵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입니다. 삶은 거인과도 같은 용기와 힘을 요구하지요. 환상을 지닌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명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평가하지 못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이 자질을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갖출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면 됩니다.

- 물질적인 어려움도 극심했지만 더욱 가혹한 것은 비물질적인 시련이었지요. 키츠와 플로베르같이 천재적인 남성도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여성의 경우에는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세상은 남성에게 하듯 “원하면 써. 나는 아무 상관없으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상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글을 쓴다고? 써봐야 무슨 소용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 소설은 실제 생활과 상응되기 때문에 소설의 가치는 어느 정도 실제 생활의 가치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의 가치는 다른 성이 만들어놓은 가치와 다른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지요.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것은 남성의 가치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축구와 스포츠는 ‘중요’합니다. 유행을 따르고 옷을 사는 것은 ‘하찮은’ 일입니다. 비평가들은 평가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책이야, 전쟁을 다루니까.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책이야, 거실에서 여성이 느끼는 감정을 다루니까. 전쟁터의 장면은 상점의 한 장면보다 중요하고, 어디서나 더욱 미묘하게 가치의 차별이 지속됩니다.


일단 어려운 물음이다. 내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며, 사회적으로도 당연 남성의 지위로 살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렇게 우월한 점은 없다. 다만, 여성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는 부분은, 글쓰기로 한정해서 보더라도 남성 또한 여성과 같은 '조롱'을 당할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남성의 글쓰기는, 우열의 가치에 놓인다. '니가 글을 쓴다고? 돈이 되겠냐?', '뭐 네가 책을 내겠다고? 누가 읽겠어?' 이런 조롱을 들을 수 있다. 남성은 경제적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야 한다. 뭐 육체적인 외적인 가치로 증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는 남성은 어쩌면 복잡하다. 남성성을 드러내야 하는지 여성성을 드러내야 하는지, 아니면 양면성을 갖춘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남녀 모두의 고민이 아닐까 한다.

3. 불가능했던 여성의 글쓰기, 그럼에도 여성만의 차별화된 글쓰기란


-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쓸 첫 번째 문장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성을 생각하면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온전한 여성이나 온전한 남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여성적 남성이거나 남성적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 창조의 예술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


저자에게 '글쓰기' 혹은 '소설'이란 시대의 흐름이나 당대의 편견 등을 뛰어넘는, 고전의 가치에 이를 수 있는 소설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저자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뛰어넘는 서사를 끌어내는 글쓰기를 강조한다. 그것이 여성이 당대를 넘어 오랜 세대에 걸쳐 두루 읽힐 수 있는 작품, 진정한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4.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글쓰기. 그밖에 삶을 일구는 다른 대안과 방법


- 저녁을 잘 먹지 않고는 생각을 잘할 수도, 사랑을 잘할 수도, 잠을 잘 잘 수도 없어요. 소고기와 말린 자두로는 척추에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으로 소고기과 말린 자두를 먹으면 바로 이런 불확실하고 제한된 심리상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여성은 늘 가난했습니다, 지난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태초부터.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더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쥐꼬리만큼도 없었지요. 그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입니다.


글쓰기, 일종의 예술활동에는 후원없이는 제대로 이뤄내기 힘들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활고를 겪으면서 글을 쓴다. 자신의 창작활동이 열정과 생산성과 연결되면 문제없다. 다만, 자신의 창작활동이 시장가치가 낮거나 없다면, 글쓰기를 할 수 없다.

대안은 글쓰기를 취미생활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일에서 자기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글로 생업을 이어나가면 된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갈증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시장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면, 정말 자기가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Diary 와 Journal 그 사이


5. 글쓰기에 대한 갈증, 나만의 글쓰기와 목적


-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그 책이 오랜 세월 가치가 있을지, 아니면 단 몇 시간 동안만 중요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거나 광범위하든 어떤 주제든 망설이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여가를 즐기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꿈꾸며 길모퉁이를 서성이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속에 깊이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갖게 되기 바랍니다.
- 나는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간단하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지 마세요. (…)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세요.


잠깐 기자를 꿈꾼적이 있어 여러 활동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아주 잠깐, 소설적 재능은 없고, 딱히 감성적인 부분도 없다. 따라서,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 문제의식을 갖고 쓰는 글쓰기로 내 실력을 기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경험이나 오늘날의 느끼는 내 감정을 기록해두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일종 일기 정도, Diary 가 아닌 essay를 추구하는 글쓰기, 약간 이런 욕심이 생긴다.

여성주의 에세이라는 관점으로 좁히지 않더라도 버지니아 울프가 글쓰기에 대한 자세로 확장해 본다면 성별이나 노소에 무관하게 분명 누구에게나 자기 가치를 실현하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는 게 필요해 보인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면 당연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온전히 자신의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토대가 없다면 역시나 하고 싶은 일 그 자체를 온전히 지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