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22/01/09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p5kk1492 2022. 1.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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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카뮈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마치면서 남은 문구다. 상당히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지프 신화>는 읽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알법한 내용. 삶이 부조리하며, 그 삶에 대해서 저항하는 인간, 신화 속의 인간인 시지프를 내세운다.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야기를 해 나갔지만, 실존주의자로 분류되었으나 실존주의자임을 거부한 카뮈, 그는 부조리 문학의 선구자이며 부조리성에 대한 고찰로 삶과 그의 사상을 다듬어 나갔다고 본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당대의 철학이나 문학, 사상의 흐름이 일종의 '신이 죽은 세상'에 대한 반작용에서 출발했다. 그 시절의 흐름을 '실존주의'로 묶어서 설명하지만, 실존주의로 스스로 분류한 사람은 사르트르 뿐이었고, 나머지 인물들은 부정했다. 다만 비판적 혹은 긍정적 접근을 통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카뮈도 실존주의자로 분류하는 키에르케고르(비판적), 니체와 하이데거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카뮈는 자살, 여기서 자살은 사회적 자살이라기 보다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상징으로 자살을 고찰한다. 살만한 가치에 대해서,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적 허무와 고뇌를 경험한다. 다만 살만한 가치보다 살아야겠다는 욕망, 그저 삶을 연장해 나가야 한다는 육체의 열망 때문에 삶의 고뇌는 뒤로 미룬다. 

 

  "부조리성" 이제 카뮈는 살만한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 뒤이어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 설명한다. 부조리성이 이세계의 근원이고, 불안정한, 모순을 가진 '불모'의 세계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부조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하이데거의 '우려'를 인용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불안정한 인간인데, 마치 영원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뒤로 미룬다. 미래의 나를 지향하면 현재의 나의 삶에 오는 불안정함을 외면하는 상태가 모순임을 지적한다. 시간성을 현재에 있고, 내일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자세가 부조리라고 말한다.

 

  "인간이 인간 앞에서 느끼는 헤아릴 수 없는 불안과 낯섦, 또는 자기 자신의 사진이나 거울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타인처럼 느끼는 단절감,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눈뜸이다." 해설 중

 

  부조리에 눈뜸, 여기서 퇴행할 지 저항할지는 당연 독자의 몫이다. 부조리는 결국 비 합리적이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이성과 합리를 갈구하는 인간과의 대립이다. 이 대립에서 타협하는 것이 신으로 다시 돌아간다거나, 절망으로 회귀한다거나, 아니면 그저 죽음을 농담 혹은 금기로 회피하는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거부하고 대립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인간,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행동하고 열정을 쏟아붓는 인간이 카뮈가 제시하는 부조리 인간상이다.

 

  다시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려'라는, 인간이 세계속에 내던져진 존재에서 느끼는 감정이 실존에 대해 눈뜨며, 이것이 폐허와 같은 세계 속에서 살아갈 길을 제시했다고 한다. 야스퍼스나 셰스토프, 키르케고르가 제시하던 결론 그리고 후설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세상에 대한 부조리, 그에 대한 도피라고 카뮈는 해석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들의 사상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짚고 넘어간다.

 

  "내가 만져보는 것, 나에게 저항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와 통일에 대한 나의 갈망, 이 세계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원리로 환원시킬 수 없는 불가능성, 이 두 개의 확신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내용 중,

 

  부조리한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앞서 내용을 제시한다. 비합리한 세계와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 그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계속 끊임없이 살만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 그것이 부조리한 자유다.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갈구할 수 없다. 투쟁을 포기하고 화해하는 인간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자살로 나타날 수 있고, 신이 제시하는 영원에 안주할 수 있다. 카뮈는 이를 거부한다. 현재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이 '현존'이다. 

 

  해설을 참조해서,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세개의 결론을 제시한다. 반항, 자유, 열정이라 말한다. 반항은 부조리한 세계가 갖는 한계, 인간이 가진 한계의 인정과 그 지속성이다. 이를 인간의 이성과 비합리한 세계와의 대립 속에서 부조리를 이어간다. 자유는 정신과 행동의 자유, 마치 사형수가 옆에서 언제든 내 육신을 처단할 수 있는 '처분 가능성'을 염두한다. 이로서 희망이나 내일을 통해 비합리한 세계를 회피하는 태도 대신 자유를 택한다. 열정은 부조리의 세계에서 앞서 말한 반항고 자유의 가치를 기치로 모든 열정을 투자하고, 그 이외의 것에는 무관심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부조리한 인간에 대해 논하는 카뮈는 돈 주앙, 연극 배우, 정복자를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돈 주앙에 대해서는 그냥 넘겨짚었다. 연극 배우는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역할에 몰입하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배우는 비합리한 세계를 살아감에 있어 일종의 부조리를 겪는다. 배우로서 한 인간에 대해 몰입하고 열정을 다해 무대 위에 오르고 다시 그것을 반복하는 삶, 일조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과정이라 본다. 아드리엔느 르쿠브뢰르라는 배우는 신의 세계에서 지옥행을 받아들이고 배우로서 죽음을, 자신의 열정을 인정한 체 삶을 마감한다. 정복자의 경우는 삶의 목적, 정복이 곧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극복'의 위대함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자들이라 설명한다. 사실 연극배우가 부조리한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이 제일 와닿았다.

 

  부조리한 창조, 여기서 많은 철학적 소설가를 제시한다. 발자크, 사드, 멜빌,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말루, 카프다 등이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 <악령>의 등장인물 키릴로프로 부조리한 인간을 말한다. 키릴로프는 일종의 신을 죽이고 신이 되는 '인신'이 된다. 완전인이라고 표현되며, 일종의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시'에 연결된다. 여기서 키릴로프는 '자살'을 통해 신이 없는 세상을 재 증명하는 과정으로 마무리짓는다. 키릴로프에 대한 도스토옙스키는 "존재는 허망하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마지막의 대단원은 시지프 신화다. 시지프란 신화 속 인물을 재 발굴 하며 그를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물로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사실 카프카에 대한 작품을 다루는 부록이 있으나, 생략한다.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내버려둔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짐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인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뛰어난 성실성을 가르쳐준다. 그도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그 후부터 주인 없는 우주는 그에게 불모의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산의 금속적인 빛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내 안의 거대한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