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길었던 해외생활

22-01-14 King James

p5kk1492 2022. 1. 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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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스와 밴쿠버에서 지낼 때 나는 James 였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당연 돈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갔으니, 이력서를 만들었다. 마침 구글로 이력서 견본을 땄는데, James park 이였다. 마침 나랑 같은 박 씨였네. 그래서 James로 살았다. 

 

  보통 한국인들은 영문 이름을 따로 만들어서 생활한다. 아무래도 서양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그렇기 떄문에 혹시나 일을 할 기회를 놓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기인하다,라고 추정한다. 뭐 꼭 한국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보통 다른 동양계 이민자 친구들은 그냥 자기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뭐 여하튼 나는 도망노비로 신분을 세탁(?) 하려고 간 거니까 나중에 영문 이름으로 James라고 바꿀 야심(?)까지 있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던 당시, 모리셔스에서 왔던 걸로 기억이 나는 한 여성(굳이 성별을 밝힐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동료가 나에게 'King James'라고 부르곤 했다.

 

  나는 뭐 왜 나를 킹 제임스라고 하지? 흠, 궁금해서 역시 구글을 통해 그냥 King james 라고 검색했다. 일단 James라는 이름이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킹 제임스 성경은 아무튼 가장 널리 읽히는 성경이라고 한다. 나는 그냥 막 고른 이름인데, 호주 친구들은 혹시 종교가 크리스천이냐고 묻기도 했다. 무종교인이다.

 

  사실 어머니 쪽이 천주교라서, 외가쪽은 다 세례명이 있다. 나는 뭐 어렸을 때, 안 받아서 냉담자도 아니고 그냥 무종교인이라고 본다. 그런데 퍼스와 밴쿠버에 살 때 종교에 힘(?)을 많이 빌리곤 했다. 일도 못 구하고 왠지 영어는 배워야 할 거 같은데 돈은 없으니, 집 근처 교회로 갔다. Anglican? 영국 국교회였다.

 

  가보니 나처럼 일을 못 구하고 영어를 배우러 온 한인 친구들, 그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나이 든 호주 어르신 분들이 계셨다. 그렇게 간단하게 영어로 이야기 나누고, 빵도 얻어먹고 했다. 한 번가고 말았지만, 나름 신세를 졌다. 밴쿠버에서는 왠지 모르게 여기저기 성당 투어(?)를 다녔다. 그땐 왜 그랬는지 뭔가 성경에 좀 심취해버린, 국뽕 말고 성경 뽕을 좀 맞았더란다.

 

  그리고 한인교회도 갔었다. 퍼스에서, 그리고 밴쿠버에서. 하도 외롭다 보니까, 조금이나마 인연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불순한 의도로 갔었다. 반성한다. 

 

몇몇 구절은 좋다. 몇몇 구절은

 

 

  지금도 여전히 무종교다. 하지만 성경 앱은 깔아놨다. 그냥 가끔 팝업처럼 구절이 뜨면, 보통은 스킵한다. 그러다가 와닿는 구절이 보이면, 누군가에게는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요즘같이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좋은 글귀를 권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King James라고 농담을 건네주던 모리셔스 친구가 생각이 난다. 오늘도 추억팔이 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