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Care giver

22/01/07 치매 어르신과의 대화

p5kk1492 2022. 1. 7. 00:04
728x90

  30대 요양보호사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7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대량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직업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잠깐 6개월 정도 한 것까지 하면 대충 5년 차라고 퉁칠 수 도 있겠네요. 그러나 4년의 기간은 거의 제대로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튼 차차 풀어나가고 오늘은 치매환자와 대화하는 법(?)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치매의 징후

 

  Dementia, 치매란 단어를 접한 것 호주에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생활이었으니, 그 나라의 용어로 학습을 했죠. 그렇게 자격증을 위해 되지도 않는 영어로 요양보호사 공부를 했고, 단기속성으로 치매나 여러 노인성 질환(기억도 안나죠 사실)을 학습하고 이제 현장으로 실제 치매 어르신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첫 요양보호사 생활

 

  Belmont nursing home. 글을 쓰면서 찾다 보니 추억에 살짝 잠겼네요. 여하튼, 요양원에서 다양한 어르신들을 접했습니다. 기억의 파편으로 삶을 이어가는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나름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했습니다. 일단 원래 Aussie 어르신들도 있었고, 1세대 이민자 출신의 추정할 수 있는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이런 구분법의 근거는 그들이 언어를 잊고 모국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태어나셨던 동유럽 할머니, 이탈리아 말을 쓰며 아침마다 소변을 받아 놓은 대야를 복도로 뿌리는 할머니 등 다양한 나라에서 호주로 넘어와 말년에 다시 자신의 모국어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어를 잊은 어르신들에게 대화는 힘들기 때문에 대충 몸의 대화(?), 바디랭귀지로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아니면 어르신들 개인 옷장에 해당 모국어에 해당하는 간단한 단어카드 정도를 보고 그럴싸하게 발음해서 노력했었죠. 독일어가 모국어였던 할아버지에게는 Wie geht es innen?이라고 한번 해봤는데 알아들었는지 독일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나름 기억에 남네요.

 

  Aussie 할머니는 자꾸 집에 가야한다고 배회하셨습니다. 자신의 기억은 집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멈춰 있었죠. 이때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대화를 이어가곤 했습니다. 집이 어딘지 묻고, 어르신께서는 Morley라고 했죠. 저는 마침 몰리로 종종 장을 보러 갔었으니, 내가 버스 타는 법을 안니까, 일 끝나고 데려가 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달래곤 했죠. 뭐 돌아서면 다시 반복입니다. 기억의 파편이기에 대화는 그저 휘발성에 그칠 뿐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배회를 말리거나 강압적으로 생활실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Dignity, 존중에 대해 몸으로 배웠습니다.

 

  치매로 인해 공격적이거나 고집스러운 어르신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방어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처음 이자 마지막으로 Cunt라는 단어를 쓰는 외국인을 봤습니다. 치매어르신이란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전두엽의 기능이 퇴행했기 때문에 그런 거지, 어르신께서 인성이 예전부터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생소한 욕설과 침 뱉기, 혹은 펀치나 이런 것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치매환자와의 몸의 대화를 겪었습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의 요양보호사 생활에서 치매와 존중이라는 두 가지 점을 마음에 두고 일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말했듯이 4년간의 고향생활을 적응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직업생활을 하진 못했습니다. 동료들이 일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맞춰야 했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고수할 수 없었죠.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내 고집을 관철하기엔 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나름 한국식 요양보호 스타일로 나름 치매어르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치매어르신들의 상태를 이해하고, 어르신이지만 아이로 돌아간 상태도 고려서 달래기도 하고 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가는 묘한 재미가 있네요. 4년간의 기간보다 6개월의 호주 요양보호사 기억이 더 강렬한 것은, 제가 삶에서 집중했던 6개월과 방황했던 4년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2022년 한해는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요양보호사 일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떠오르는 때가 되면 요양보호사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양보호사 Care giv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양사!! Carer!!  (1) 202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