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배울때, 항상 새로운 국가가 선포되면 비지배층에게 세금을 경감해줬는데, 그것이 수입의 10분의 1만 거둔다고 흔히 말했다. 대표적으로 왕건의 고려건국에서 10분의 1만 거둔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세금징수가 혹독했던 고대의 역사에서 10분의 1의 세금만 걷는다는 것은 피지배계급의 불만을 잠재우고, 지배층의 관용을 보여주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종교에도 십일조의 개념이 있다. 정확히 성경 구절에 등장하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가진것에 맞게 바치는 것이 대체로 10분1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진돈이 2닢뿐인 과부가 이를 바치는 모습을 보고 예수가 경탄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상 빈자에게 10분의 1은 의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서는 세율 10퍼센트 구간은 국가를 운영하기 힘들다. 아마 세율을 면제받는 구간 혹은 대략 20퍼센트 정도의 세율이 평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은 최대세율이 47퍼센트에 육박한다. 이자쪽에서는 10퍼센트는 어떤 목적으로 빌렸느냐, 그리고 기간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높을 수 있고, 낮을 수 있는 세율이다. 과거 법정 최고이율이 66퍼센트였다. 법이 보장한 이자를 일년 최대 66퍼센트까지 뜯어낼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니. 지금도 물론 천퍼센트 이런 말도안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10분의 1이 관용인 세상이 존재한다. 역사의 태동기에는 지배층이 세율을 거둬가는데 계획없이 행동하면 폭정이되고 결국 그것이 반란과 체제전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10분의 1의 관용과 규칙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아마 10분의 1은 역사성 뿐만 아니라 관용의 상징이었기에, 성경이나 기타 종교적 활동으로 후원을 요청할떄 십일조의 개념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아마 철학적인 관념에서 10분의 1을 내어주고, 받고자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챗지피티에서 찾아봤지만, 내가 말한 부분과 결이 같다. 종교에서의 십일조 개념은 관용을, 국가에서 걷는 십일조 세금은 피지배계급에게 적정선의 세율을 정화는 과정에서 택한 세율 등이다. 아무래도 과거에는 정복전쟁을 통한 수입이 세원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점차 사회가 고도로 발전해서 이제 국가에서의 세율은 복잡해졌고, 종교에서의 십일조는 세속화되어간다.
십분지일의 관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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