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1861
남아공의 아파르헤이트 정책, 백인 통치를 끝낸 인물로 유명한 넬슨만델라의 정당이 과반달성에 실패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는 넬슨 만델라의 이름으로 30년간 버텨온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남아공 정치에 아는 바는 없다. 다만 백인 통치가 종식된 이후의 남아공의 정세가 아름답게 흘러가지 만은 않은점은 대략 알고 있다. 물론 피해자로 자처하는 남아공 백인 여성의 입을 통해서 듣긴 했지만 말이다.
기사는 핑계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만난 남아공 출신이 백인 아주머니에 관한 기억이다. 당시에 호주에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살던 나는, 우연하게 야채배달 알바를 구했다. 워홀러는 보통 세금을 덜 내려고 이른바 세금을 내면서 페이를 받는 텍스잡, 세금신고 없이 현금으로 돈을 받는 캐시잡을 병행하곤 한다. 보통은 캐시잡으로 시작해서 안정적인 텍스잡을 구한뒤에 병행하는 식으로 열심히들 산다. 나는 끈기가 없어서 그냥 텍스잡 하나만 대강 하고 그러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때 당시 사장과 사모, 여기서 사모가 남아공이민자출신인데 사장도 같은 출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이혼하고 동업하는 형태인데, 웃긴건 가족들이 운영하는 자영업이었다. 이혼하고 나서 사장도 망했는지, 내연녀는 도망가고 그사이에 나온 아들을 키우면서 그렇게 이혼한 부인과 딸이 같이 일하는 형태였다. 뭐 비즈니스 관계인건지 정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같은 남아공이민자의 동질감인지 모르겠다. 다시말하지만 사장은 남아공출신인지 모르겠고, 별로 좋지 않은 기억때문에 관심도 없었다. 우리도 뭐 떳떳한 캐시잡을 하는건 아니지만, 그걸 이용해 먹는 사람이 널린게 그 세상이니까.
이제 일을 배우면서 남아공계 사모님과 대화를 나눌때가 있었는데, 대화를 이어나가는 능숙함이나 친절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더 강렬한 기억은 그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남아공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던 상황이었다. 내용은 대단히 잔혹했기 때문이다. 아파르헤이트가 끝나고 정권은 흑인에게 넘어간 상태, 백인들은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남아있는 백인들은 거주지의 경호수준이 무슨 북한 철책선 수준이었다. 들어본 바로는 경비나 보안 뿐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철책선 같은 장치도 해놓는 다고 말했다. 사모님이 말할때 워낙 친절하고 유쾌하게 말해서 하하호호 했지만, 흑인들이 그동안 억눌려온 분노가 상당해서 백인들의 공포감이 컸구나 싶었다.
충격은 사실 여기서 오는게 아니다. 흑인들이 백인들의 가정에 습격해서 한 행위는 강도는 뭐 기본이겠지만, 가정 내 구 성원을 모두 강간한다는 점이다. 유아여도 말이다. 이건 사실상 살해나 마찬가지다. 나이라고 불리기도 어린, 6개월이 된 혹은 3개월이 된 영아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몹쓸 짓을 한다고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되도 않는 영어로 들으면서도 충격을 받았다. 근데 사실 기사나 뉴스로 대강은 알고는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육성으로, 내 나라가 아닌 말로 듣는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남아공이 아무리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해도, 아프리카 내에서는 그나마 잘 사는 편이라고 한다. 영어권이다 보니 남아공으로 유학가는 학생도 꽤 있을텐데, 사실 괜찮을 지 모르겠다. 넬슨 만델라는 인생의 대부분을 백인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감옥생활도 버텨왔다. 아파르헤이트 종식 이후에도 남은 백인들과 화합하고자 애쓴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 노력이 과연 진보하고 있는지, 만델라당이라고 불리울 만큼 30년간 유지한 정당의 과반도 무너진 마당에 말이다. 글을 쓰면서도 남아공 사모님이 전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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