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에세이 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저

p5kk1492 2024. 7. 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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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작가를 알게 된 시점은 JTBC 마녀사냥을 시청하면서다. 영화관련 칼럼을 쓰면서, 진보진영의 논객 등과 같은 타이틀은 나중에 알았고, 마녀사냥에세 보여준 솔직함에 빠진 여느 시청자와 같은 마음으로 그를 접했다. 한창 여러 매체에서 활발하게 보내다가 혈액암을 겪고 난 뒤 달라진 모습과 발언으로 등장했었다. 그 시기에 살고 싶다는 농담이란 에세이도 썼다. 마녀사냥의 허지웅에서 작가 허지웅으로 다시 만난 셈이다.

 

이번 에세이도 작가 허지웅이 궁금해서 읽어봤다. 2022년도에 나온 책이라 꽤 지나긴 했지만, 시대의 유행에 따라 만든 책은 아니라서 크게 괘념치 않았다. 산문집이란 부제를 통해, 짧은 생각들을 묶어 내놓은 에세이의 형식이었다. 살고싶다는 농담보다 좀더 글이 다채로웠다. 작가의 글은 예전의 방송이나 트위터에서 보여주던 직설적이도 까칠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좀더 다정한 느낌이 전달된다. 결어를 입니다체로 끝맺음 해서 좀더 그럴수도 있다. 글을 쓰는 허지웅작가는 확실히 좀더 차분한 정서로 다가온다.

 

책을 보면서, 맘에 두는 이야기를 몇 가지 추렸다. 1부 애정에 대한 글 중에 아무것도 나눌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작가도 예전에 나누지 못하던 삶은 살지 않았었나 싶다. 방송에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한 바가 있어, 그가 나눌 수 있는 행복을 글로 남길 때 진정성이 있었다. 

 

2부 상식에선 아동학대에 대한 무고로 인해 자살을 택한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글이 나왔다. 무고로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 무고..까진 아니지만 사실 고 이선균 배우가 겪은 상황이 오버랩된다. 법에 대해서 배울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알게 되지만, 세상은 유죄 추정의 세계관으로 굴러간다. 일단 죄인으로 낙인을 찍고, 대상을 죽인다. 나중에 무고로 밝혀져도 그땐 이미 늦은 뒤다.

 

4부 반추에서는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해 다룬 글이 인상적이었다. 피에누아르, 알제리에 살던 프랑스계 백인들과 알제리인의 대립에서 나는 카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자유는 공짜는 아니란 말이, 한국의 역사에서도 수많은 이들의 피로 얻어낸 자유를 누리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피,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피로 물든 역사속에 자유의 꽃이 피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필수 있음을 보여준 날,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와 선배님들 덕이다.

 

살고싶다는 농담에선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이번 최소한의 이웃은 다양한 글감으로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참 좋았다. 역사적인 사건, 문학작품, 만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 등 마치 낡은 서랍속의 바다같은 그의 다양한 글감들이 널려 있었고 조화로웠다. 

 

좋은 에세이를 만나는 것만큼 유쾌한 일도 없다. 에세이란 장르가 사실 진입장벽이 낮으면서, 높기도 하다. 네임밸류가 없으면 사실 읽히지도 않으니 말이다. 나는 지적 허영을 버린 뒤에 에세이를 즐겨 본다. 물론 허지웅작가의 에세이는 콕 찝어 고른 부분이라서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선택이었다. 범람하는 에세이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을, 그리고 그 작가의 인생을 엿보는 것은 참 좋다. 엿본다는 표현이 약간 관음적인 뉘앙스긴 하지만, 사실 누군가의 글을 보고 동경하는 마음을 뜻한다. 

 

나도 언젠가, 에세이를 쓰고 싶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고, 나의 인생을 엿보고 느끼는 바가 있길 욕망한다. 아직은 그 정도의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렇게 자동사냥하는 댓글정도만 달리는 허접한 블로그에서 기생할 뿐이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나의 개소리를 남긴다. 이렇게 산다는게, 부끄럽지도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담담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나의 흔들리고 요동치는 삶에 대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에세이로, 메세지로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