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미완의 감상,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즈

p5kk1492 2024. 7. 2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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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옮긴이의 말을 통해 다시 곱씹어봤다. 성공한 금융업자 엔드류 베벨의 이야기를 4가지의 시선에서 다룬 구조인데, 왜 나는 더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1부와 3부는 내가 읽었던 점과 옮긴이의 말이 대략 결이 비슷했다. 그나마 덜 오독한 느낌이었는데, 2부는 무슨 자랑질하는 느낌의 챕터인 줄 알았는데 3부의 주인공 파르텐자가 대필한 엔드류 베벨의 미완의 자서전이었다. 4부는 나에게 좀 난해한 느낌이었는데, 앤드류 베벨의 부인 밀드레드의 일기다. 기록이라고 하기에 간단한 감정이 적혀 있다가 순간 정상적인 느낌의 문장이 등장하길 간헐적으로 반복한다. 여기에 밀드레드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던 점은 아예 눈치채지도 못했다.

 

책은 성공한 금융업자인 앤드류가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은 밀드레드란 여성이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1부의 느낌만 보면, 밀드레드는 야심많던 앤드류에 의해 정략결혼을 한 여성이다. 둘은 부부로서 서로 나름 사랑과 앤드류의 성공을 함께하던중 정신적인 문제로 죽고 만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앤드류는 부인을 살리고자 헀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자 냉정하게 채념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기는 좀 이해가 된 편이다. 1부 소설가의 의도란 점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알았다.

 

2부는 미완의 자서전인데, 그냥 자신의 가문의 자랑일색이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밀드레드가 순종적 여성으로 묘사된 점은 느낄 새도 없을 정도로 지루했다. 3부가 이제 대필가의 시선인데, 제일 재밌는 목차였다. 그동안 앤드류 중심의 이야기였다면, 대필가인 파르텐자가 겪는 가정 내 갈등과 화해, 앤드류를 향한 인정욕구와 실체에 대한 인지 등 그녀의 복합적인 서사가 나타나서 읽기에도 재밌었다. 앤드류는 여기서 밀드레드에 대해 은인처럼 말하기도 하고, 순종적인 부분으로 다룰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옮긴이의 말을 보고 나서야 왜 이렇게 까지 했지 이해가 되었다.

 

4부 밀드레드의 기록은, 사실 난 정신이상자의 일기정도로 치부해버렸다. 정신이상은 아니지만, 삶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의 기록이었다. 단순한 감정만 나열되었다가 어느순간 정상적인 정세 판단을 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밀드레드가 사실상 앤드류 베벨의 브레인이나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앤드류가 이뤄놓은 성공의 뒷면에는 순종적인 여성이 아닌 실제 뛰어난 지식을 갖춘 밀드레드가 실체였던 것이다. 1부에서도 밀드레드가 지적소양이 뛰어남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금융에 관한 지식과 행동력까지 갖춘 여성일 줄은 미쳐 몰랐다.

 

앤드류는 허상이고 밀드레드가 실체였다. 트러스트, 믿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앤드류가 성공한 금융업자, 자선가, 혹은 야심에 차서 부인을 잃어도 상관없는 냉혈한이란 믿음을 가졌다. 다만 실제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것은 같은 여성인 대필가 파르텐자였다. 그녀가 앤드류에 대한 실체를 알아가면서, 밀드레드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그렇게 앤드류에 대한 옳던 그르던 특정한 믿음이 사라지고 밀드레드가 드러난 셈이다.

 

순종적인 여성일것이란 믿음, 정신적인 문제로 죽었을 것이란 믿음, 밀드레드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실제 그녀의 뛰어남을 드러내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여기서 빛나는 여성은 파르텐자가 아닐까 싶다. 젠더로 묶는 것은 조금은 비합리적이지만, 같은 여성으로써 한 여성을 잘못된 믿음에서 건져내었다. 밀드레드는 죽었지만, 파르텐자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제대로 읽지도 못한 주제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글을 쓰긴 썼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양심없는 감상, 트러스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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