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터널적 사고와 극단적 선택

p5kk1492 2024. 7. 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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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oul.co.kr/news/plan/Villain-office/2024/07/25/20240725016004

 

[단독] 가족 실망할까 말도 못 하고… 유서로 고백한 ‘떠밀린 죽음’ [빌런 오피스]

3회 사라지는 피해자, 왜 침묵했나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사회, “엄마 미안해. 나한테 해준 게 없다 했지. 그래도 엄마 자식으로 태어나서 행복했어.” “여기서 못 버티는데 어디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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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유서를 분석한 기사다. 퇴사대신 죽음을 택한 그들에게 있어 나는 터널적 사고를 떠올렸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죽음말고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이는 쉽게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퇴사하면 되지 않냐고, 쉽지않은 일이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면 낙오자가 된다. 내가 이것도 못버티면 다른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정말 가족들한테 말하기 힘들다. 죽고싶다. 아니 죽어야 겠다. 그렇게 유서를 쓴다.

 

기사 말미에 숙명론적 자살이란 표현이 나온다.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나오는 자살유형이다. 사회규범이 필요이상으로 강할때, 내가 규율에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이라 여겨 죽음을 택하는 유형이다. 군인이 대표적 사례인데, 간호사들의 태움이나 직장내 괴롭힘도 일종의 숙명론적 자살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부분이다.

 

자살에 대한 기사만 보면 유난히 마음이 무겁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 지옥이 펼쳐진다. 상상만으로도 그들이 겪는 고통을, 누가 감히 헤아릴까. 그들이 남들보다 나약할까. 그들이 단지 사직서를 못내서 죽어버린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걸까. 왜 아직도 사람들은 자살이란 단어를 보면서, 그용기로 살지 그랬냐 하면서 안타까워 하는, 비공감적 표현을 던질까. 그런생각을 하게된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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