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구 워홀러의 변명

p5kk1492 2024. 8. 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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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워홀 경험을 숨긴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기사를 두고 글을 썼다. 커뮤니티에 나뒹구는 글을 긁어다가 기사랍시고 쓴 내용이지만, 사람들이 워홀러 출신 여성, 더 나아가 워홀경험자에 대한 생각을 나름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워낙 워홀 경험 여성에 대한 편견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호주에서 지내는 2년간 보고 들은게 있었고, 직접 경험한 것도 있다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란 점도 안다. 그래도 좀 심하다 싶어서 글을 남겼다. 그리고 워홀러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하는 점도 이야기 하고 싶긴 하다.

 

내가 워홀을 2014년 2월에 시작했다. 2013년에는 준비아닌 날백생활로 허송세월 보내던 중 호주에서의 사건사고를 뉴스로 접했다. 2013년에 브리즈번에서 두명의 워홀러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 이후에도 다른 워홀러 혹은 유학생들이 살해당하거나 폭행당한 기사가 올라오곤 했다. 내가 갈 곳은 서부의 퍼스였기에 큰 부담은 없지만, 좀 좋지 않은 기사들로 인해 불편했다. 그 중에서도 한인 워홀러 반은지 양의 사망 소식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까지 기억할만큼 안타까움이 내 머리에 남아있다.

 

당시 2013년 브리즈번에서 두명의 워홀러가 살해당했다고 말한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반은지양이다. 다른 한분도 안타깝지만, 워홀러 벌어둔 호주달러를 좋은환율로 바꿔준다는 말에 속아 당하셨다. 이름도 공개가 안되었고, 살인 피의자는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 반은지양은 91년생으로 88년생인 나보다 겨우 3살밖에 어리지 않았다. 워홀을 간지 6주밖에 안되었고, 새벽4시에 호텔 청소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6주만에 구한일이라 한인이 알선한 불법 캐시잡일 가능성이 높은게, 일단 출근 시간대가 너무 이른 느낌이다. 

 

 보통 한인들이 일정 구역을 맡아서 워홀러들에게 캐시로 일을 시킨다. 시간대가 당연히 새벽인데, 여느 청소잡이 다 새벽이더라도 오지잡같은 경우 오피스 직원들이 일할때 함께 청소를 하는 정규시간스러운 일자리가 있다. 보통 새벽에 남들 잘때 일시키는 건, 한인 그리고 다른 이민자 출신들이 도맡는데, 거기서 차액을 남기려고 한인사장은 캐시로 워홀러를 고용하는게 불문율이다. 자동사냥 돌리는 셈이다.

 

반은지 양의 노력으로 정규일을 구했건 불법 캐시잡이건 이부분을 지적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호주의 새벽과 밤거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특히 동부의 대도시인 브리즈번, 시드비, 멜버른은 상태가 좋지않다. 대도시라고 해서 안전할 거란 생각은 버리는게 좋다. 술에 취한 현지 로컬들이 행패부리는건 예사다. 지들끼리도 치고박기때문에, 주말의 사건을 대비해서 경찰들이 스쿼드를 짜서 순찰을 돈다. 4인1조로 움직이는데, 무슨 스파르탄인줄 알았다. 저게 진짜 경찰의 피지컬이란 것을 느꼈다.

 

새벽 4시였다면 보통은 피크시간은 지나고 이제 길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나, 반은지양 처럼 새벽청소를 나서는 사람들 뿐이다. 그런데 그 때 한 미친 살인귀가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91년생의 반은지양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만으로 33세의 나이였을 친구가 지금은 세상이 없다. 피의자는 2018년이 되서야 무기징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조건이 된다. 조현병을 주장하며 5년을 끌어서 얻은 결과다.

 

내가 굳이 반은지 양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야기는, 호주에 오는 많은 한인 워홀러 여성 친구들이 소위 해외의 자유로움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즐기고 싶으면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을 단기간에 가는게 빠르다. 1년짜리 비자를 받고, 단지 즐기고 놀려고 호주를 오기는 좀 맞지 않는다. 물론 1년간 체류하면서 번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일하는 과정에서 연애를 즐기는 정도의 행복은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안된다는게 흥미로운 점이다.

 

한국인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특히 주변의 눈치를 잘 본다. 이제 호주 1년짜리 비자가 생겼고, 내가 어느정도 괜찮은 주급을 벌기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제 예전에 여행과 새로운사람과의 만남이란 목적이 점차 희미해진다. 점점 돈으로 귀결된다. 호주의 1년비자, 세컨비자를 통해 연장하면 총2년이다. 그러면 이제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내가 정규잡 하나 캐시잡 하나 등등 해서 주급을 예상하고, 얼마를 셉이브하면 2년간 모을 수 있는 돈에 대해 계산하는게 습관이자 일상이 된다. 대화의 주제가 주급이 되기도 한다.

 

내가 제일 기분 더러웠던 인삿말이,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대 워홀러가 내 주급을 먼저 물어보는것이었다. 내 이름으 '주급이 어떻게 되세요?'였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라서 딱히 상관도 없고, 만족하고 있었지만, 주변 워홀러들 분위기가 다 이렇다. 다들 처음에는 영어도 익히고, 돈도 벌고,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별의 별 토끼란 토끼는 다 잡을 생각으로 시작하는 워홀이지만 현실은 그저 얼마를 남겨먹어야 할까 뿐이다. 좀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나도 돈에 대해서 좀 덜했는데 어느순간 주당 얼마를 벌어야 세이브될텐데 이걱정을 하기 시작하더라.

 

이건은 여성 남성을 떠나서 워홀러라면 다 겪게 된다. 그래서 생각보다 문란하게 여러 남자를 만나고 그러는 여성도 없다. 해외기 때문에 그런  유형의 사람은 좀더 늘어날 수 있다. 해방감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워홀바닥이 빌어먹게 좁아서 금방 소문이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랑만 어울리거나, 아예 영주권자 커뮤니티에 가기도 한다. 워홀러들이 워낙 뒷말이 많다보니 말이다.

 

정말 자유롭게 한국사람 눈치 안보고 해외에서 놀고 싶으면, 단기로 여행을 떠나는게 맞지 워킹홀리데이비자는 부적합하다. 놀기 위한 돈을 마련해야겠다 마인드는 사실 오래못간다. 생각보가 일구하는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게 크다보니, 그냥 몇개월 단기로 있다가 돈까먹고 돌아가거나, 돈버는 기계가 된다.

 

물론 호주워킹홀리데이의 특수성일 수 있다. 시급이 높고 돈이 된다는 나라, 2년이상 머물수있는 특이한 조건이다 보니 그렇다. 다른 곳은 나름 워홀밸(워킹과 홀리데이의 밸런스)이 좀 보인다. 내가 반년넘게 지낸 캐나다도 호주랑은 좀 다르긴 했다. 좀더 이민자 친화적 분위기에 밤거리도 한국못지않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일자리가 큰돈 버는 느낌보다는 생활비 겸 사람들과 어울릴 정도의 수준이다. 이정도 분위기면 아마도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여성들도 있겠다 싶겠지만, 도시의 규모나 한인의 입소문을 무시하기 어렵다. 해외에 나간다고 우리가 마치 그냥 동양인 엑스트라가 될거라 생각하겠지만, 한인의 눈은 매섭다.

 

각국에서 해외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거기서 단맛도 보고 쓴맛도 보고 심지어 똥도 밟을 수 있다. 남는 것은 경험이고, 그로 인해 넓어진 시야를 바탕으로 살아가는데 활력이 되기도, 가끔은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대해 의하함을 느끼기도 한다. 원래 어떤 행동이나 선택에는 항상 오해와 억측이 따라온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안다. 그 사람의 선택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 가까운 사람이 바로 당신이란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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