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22/01/05 책 , 그리고 여성

p5kk1492 2022. 1. 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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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책을 읽는 과정은 혼자 곱씹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책에 대해 물었을 때 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이해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마냥 책을 편식하거나, 그냥 대충 읽고 덮는 것, 그것 또한 자유다. 그래도 이왕이면, 결국 모든 삶의 과정은 의사소통, 관계 맺음의 영역이 아닐까. 그래서 책 이야기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워 일단은 일기라는 카테고리에 넣는다.

1. <세 갈래 길>의 전체적인 소감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가 '인도여성'과 '달리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해서 읽었다. 다만 나머지 두 여성의 삶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은 소화했다. 줄리아의 경우 전통적 가부장적인 가치관(가업, 지노 바타글리올라와의 결혼제의)를 택하는 대신 새롭게 기회(시크교 남성과 인연, 인도산 가발사업)를 찾았고, 사라도 질병(유방암)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업무로부터의 배제, 승진 기회의 박탈, 이네스, 게일 커스트, 존슨)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외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가발을 맞추는 과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가발은 인도 여성의 염원, 이탈리아의 여성의 반전, 그리고 캐나다 여성의 마음가짐 변화를 머리카락으로 묶어서 마무리한다.

2. 주인공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셋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는 사건으로 인해 삶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것이라 생각한다. 스미타는 자신의 삶은 받아들이지만 랄리타까지 달리트로서,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점에서 결심했고, 줄리아는 가업을 잇고, 자신의 낭만을 나름 채워나가는 여성이었으나, 아버지가 쓰러지고 가업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결혼이나 가업의 포기라는 임계점을 맞이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사라또한 강인한 여성이자 커리어 우먼이었으나 암을 얻고 병자라는 소수자의 위치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나름 결론을 찾았다고 본다.

차이라면 스미타는 달리트라는 신분, 결국 힌두교가 기반한 카스트에서 나왔지만, 비슈누에 대한 신념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줄리아는 시크교 이민자와의 관계를 통해 머리카락의 해외 수입(인도산)을 통한 사업전환, 사라는 항암치료로 인한 외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발상을 전환한다는 점이 차이라고 본다.

3. 인상에 남는 길(또는 여정)은?
  저는 개인적으로 스미타의 그 여정이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면서 최하위의 신분인 달리트, 게다가 남편 나가라잔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과 자신의 딸의 미래를 위해 북인도에서 남인도까지 가는 그 여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북인도의 바들라푸르에서 남인도의 첸나이, 이건 단순히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전반을 갈아엎는 실험이고 모험이다. 남인도는 피부색, 바나로 구분하는 개념이 약해서 카스트가 조금 관대하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아는 카스트는 바나(4대 카스트)이고, 자티가 심각하다.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것과 동시에 패밀리 네임으로 상대의 직업(자티)과 카스트를 확인하는 과정이 인도 사회에 존재한다.

  약 1700km 라는 대장정을 대략적으로 느껴보려고, 예전 내가 호주살이할때 좋은 오지잡의 기회를 잡으려고 똥차를 끌고 1300km의 여정을 경험한 것이 떠올랐다. 스미타는 그녀의 딸 랄리타와 함께 열악한 기차 환경을 견디며 간 것이고, 나는 뭐 비록 도착 후에 생을 마감한 똥차, 그래도 편안한 기회가 보장된 환경으로 간 것이기에 당연히 비교가 불가하다. 다만 그 먼 거리에 대한 경험적 측면으로 스미타의 놀라운 여정을 감상했다.

북인도 바들라푸르에서 바라나시 그리고 남인도 티루파티 사원까지의 여정, 1700km 에 다다르는 그 대장정, 물론 첸나이가 목적지였지만, 정말 그 험한 여정을 견디고 사원에서 성스러운 의식 비슈누 신을 위해 자신과 딸의 머리카락을 바치는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4. '옮긴이의 말'에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온다.

"이 작품에 담긴 여성주의는 남성 대 여성이라는 성이분법의 편 가르기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 소수자, 비주류, 사회 내의 약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유형무형의 무수한 차별에 희생되는 이들과 입장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려는 인간적 연대를 역설한다."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소설에 어떤 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게 했는가?

  일정 동의한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배제한체 읽더라도, 스미타는 여전히 달리트, 변을 치우고 자신의 자식의 미래를 염려하는 최하위 신분이고 비주류라 할 수 있다. 줄리아도 전통적인 시칠리아에서 보편적인 삶을 강요받는 결혼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또한 비주류)과 연인이자 파트너가 되는 과정이고, 사라도 전문직의 종사하던 알파일지라도 질병에 걸리는 순간 소수자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소수자나 비주류,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는 점이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다.

5. 책은 핵심은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입니다.

같은 지구, 같은 시간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명의 여성이 각자의 현실을 순응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나아갑니다.

2022년 임인년이 시작됐습니다. 내가 달라지기 위해서,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길을 나아가려고 하시나요?

  2016년에 부득히 제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2021년 초까지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삶의 변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아졌다는 희망을 보고 작년을 마무리했습니다. 결론은 스스로 내가 하는 행동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자기 객관화를 하려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나 스스로 한테는 좀 더 냉정하게 평가하고, 남을 대할 때는 이해하려고 애쓰고자 합니다. 그렇게 2022년을 마무리한 뒤, 2023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해 나갈 계획입니다.

 

P.S. 줄리아라는 이탈리아 로컬 여성이, 난민 출신의 중동인지 펀자브인지 모를 시크교도와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만 뺸다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임에는 동의합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는 책임에도 여성주의에 대해 언급하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남성은 여성주의에 대해 논을 가격이 없다는 전제"에 일정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남성이 여성들을 타자화 하는 주체로 바라보고, 상호교차성 여성주의자들은 남성도 함께 여성과 평등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논합니다. 한편으로는 남성들이 여성의 편에 서는 것을 조롱하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여성들도 여성주의에 대해 혐오하는 시선을 보이기도 합니다.

 

  1000페이지라는 분량이라서 읽지는 않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이 등장한 1949년, 그리고 1970년대 68혁명이후로 여성주의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면서 여성주의가 세계 전반으로 나아갔고, 오늘날 한국에도 급진적 여성주의가 특수한 방향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왜곡된 여성주의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인식을 갖고 움직이다 보면 과격해지거나 급진적으로 변하는 경향성을 갖습니다. 

 

  과거의 사회주의가 최신의 학문이고 트렌디한 세상일 때, 모두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공산주의를 주장하면, 한심하다 여깁니다. 사회주의자들이 극단으로 나아가면 아나키즘으로 나아가기도 했으니, 어찌 되었던 모든 생각의 극단에는 그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그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정치, 사회, 종교, 이념에 대해 침묵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남겨놓으면 조금은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아서 사족으로 달아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