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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
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
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부터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
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
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
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
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지나고 보니 박경리 작가에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분의 명성만 알고 아는체 했을 뿐인데, 이번 시집의 첫 작품을 접하면서 나름의 삶의 회한을 시로 느낀다.
나는 내 인생의 파도가 있는 놈이라 말하고 다닌다. 저자의 인생에 비하면 얼마나 편하고 게으름으로 점철된 삶일까. 산다는 게 쉽지 않다고 입에 달고 사는 놈팽이가, 시를 쓴 분의 삶에 대하 회한의 깊이가 바닷 속 심연보다 깊어 부끄러워 어딘가 숨고 싶다.
나도 언젠가 인생의 황혼기에 누군가에게 이런 생동감있는 발자취를 남긴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다. 지금에 내가 글과 말을 흔적으로 남기는 것도 나름의 발버둥이다. 산다는 것이 참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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