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박경리, 2부 어머니 <어머니의 사는 법>

p5kk1492 2024. 10. 8.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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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어머니의 사는 법

 

내 것 아니면 길가 개똥같이 보인다

단단한 땅에 물 고이고

오늘 먹으면 내일 걱정을 해야 한다

항상 하던 어머니의 말이다

또 한마디 하는 말이 있었다

자식을 앞세우고 가면 배가 고파도

돈을 지니고 가면 배가 안 고프다

 

그 말 그대로 살다 간 어머니

남의 것 탐내거나 부러워한 적 없었고

쉬어서 못 먹는 밥도 씻어서 끓여 먹고

가을에는 일 년 치의 땔감 양식을

장만하지 않고는 잠이 안 오는 성미

하여 태평양전쟁 말기, 육이오전쟁 때도

우리는 죽 아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돈은 어머니의 신앙이었다

 

장무새는 충분하게, 밑반찬은 빠짐없이

늘 준비가 돼 있는 상태였기에

시장 출입은 한 달에 두세 번 할까 말까

장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들었지만

평소에는

쓸 만큼 손수건에 돈을 싸서

어머니는 그것을 꽉 쥐고 다녔다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았으며

다만 옹기전 앞을 지날 때는

예쁘고 야문 단지를 골라 들고

한참을 살피는데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듯

값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장독대 항아리는 윤이 나서 반짝거렸다

방 안의 이불장에도 비단 이불이 그득했다

이불의 몇 채는

내 혼수로 준비한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말하기를

여자란 음식은 아무거나 먹어도

잠자리는 가려서 자야 한다

그래서 이불 호사가 그리 대단했을까

깊은 겨울에도 우리 모녀는

온 집 둘레에 장작을 쌓아 놓고도

불 안 땐 냉방에서 잠을 잤다

이불 요를 두 채씩이나 깔고 덮고 잤다

사막 같은 집 안이었다

 

장독대와 장롱 속의 비단옷

이불장의 비단 이불 그것 말고는

색채도 모양도 없는 살풍경이었다

부엌에는 막사발 몇 개

겨울에는 놋그릇이었지만

소반 물독 가마솥 두 개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세간이 없다

길이 잘 난 가마솥은

메주콩을 삶는다든지 간장을 대린다든지

빨래를 삶고 손님이 온다거나

그럴 때만 사용했고

대개는 작은 법랑 남비에

장작을 성냥개비처럼

칼로 잘게 쪼개어 밥을 지었다

평소에는 밑반찬 한두 가지

된장국 김치가 고작인 밥상

....

 

시가 아니라 그냥 에세이어서 중간에 쓰다가 생략한다.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의 장편서사시었고, 어머니에 대한 삶과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이나 감상, 생각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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