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네겐 없었어
네가 내게 했듯이,
기억해 내가 아파 했던 만큼 언젠가
너도 나아닌 누구에게 이런 아픔
겪을 테니
에메랄드 캐슬 - 발걸음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나를 너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환심을 사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니까 상대에게 맞춰준다. 그러다가 너와 내가 다름을, 아니 틀렸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작은 단점이 그동한 수많은 장점들로 가려왔던게 들춰진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지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사랑을 했는지 깨닫는다. 내가 사랑을 할 때,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를 이해하고 돌아보게된다. 사랑의 끝에는 반성의 과정도 있다.
사랑을 많이 하라는 조언은 아마 나에 대해 알아가는 가장 강렬하고 빠른 피드백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공부, 책상머리에서 배우는 간접체험과는 다른 배움이다. 특히 사랑은 정말 남이나 다름없던 두 사람이 가족보다고 더 강렬한 이끌림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그과정에서 알거 모를거 다 알고, 찢어지듯이 끝이난다. 그렇게 관계를 배우고 사랑을 추억으로 남겨둔다.
사랑이 배움이라면 내 학력은 지금 실제 대학 제적과 함께 멈췄다. 사랑학과 재입학이 가능할까? 독거노총각론으로 학위를 다시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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