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읽은 책 여자 주인공들 오지은

p5kk1492 2024. 12. 1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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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가 담긴 소설들, 그 시대를 반영한 대표작을 분석해서 탁월한 식견을 전해주는 작품, 여자 주인공들을 접했다. 사실 지난 번 1픽이 되었던 작품처럼 여성들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소설을 장치로 다룬 정도일 줄 예상했다. 해당 책에 담긴 글들은 저자가 작성한 논문을 바탕으로 썼다. 꼭 논문이 일반적인 글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치밀했다. 그리고 설득력있었다. 

 

이 책에서 여자 주인공들, 여성 서사의 작품 속 캐릭터들과 시대정신을 잘 분석했고, 호소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성이거나 이야기의 중심이 여성이라고 해서 주목한 것은 맞다. 그럼에도 내가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에 불편감 없이 독해가 되었던 것은 논리정연했다. 저자의 해석도 물론 어느정도 개입이 되었지만,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나서 나온 근거가 이기에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왜 내가 불편함에 대해 논하고 있는지, 현재 여성서사를 다루는 작품들이 과연 저자가 주목할만한 대표작이 몇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0년대의 여성 서사 작품의 주제는 젠더갈등 속에 나타난...으로 시작하는 전제가 깔린 다음 논문이 쓰여질 순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지만 남성이다.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상생의 존재로서 여성은 인정한다. 불편감과 적대감, 그 너머 남성이란 젠더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의 극단에 대해서는 두려운과 혐오가 앞설 수밖에 없다. 혐오는 설득될 수 없다.

 

책 내용을 말해야 하는데, 내가 서평을 하기에는 수준미달이라 흐름을 설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실 통사위주로 흘러가는, 시대순으로 나열되는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좋다. 내가 여성 서사의 대표작을 모아놓고 시대별 여성의 모습의 변천을 언제 보겠는가. 게다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논리정연해서, 이번 주의 세권의 밀리 독점 서적 중에서는 제일 가독성이 좋았다. 상대적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요코하마 세탁소 보다.

 

이 책을 보면 제목은 여자 주인공들이지만, 현대사의 그림자였던 여성 서사를 저자의 분석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남녀를 떠나 한국사 속 여성의 현실을 흐름에 따라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었다. 장남만 부각되는 현실에서 K장녀의 존재, 여아 살해의 저주라는 표현 속에 담긴 할머니 샤머니즘 등 독특한 표현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여성 주인공이 남성편력을 이용해 성적으로 혹은 성적인 접촉 없이도 자신만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도 있었다. 사실 성적인 개방성이 등장하는 때는 대체로 90년대지만, 그 이전에도 남성의 욕망에 대한 여성의 태도는 여전히 변화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이 여러 남성과의 성적인 관계 혹은 성적인 관계는 없지만 유부남의 관계를 맺는 여성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화 단계는 중산층이 된 어머니와 데모하는 딸, 그 둘을 묶어 모녀가 가진 특이성을 논한다. 보통 모자지간과 모녀지간에는 다르다는 말을 일상에서도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풀어내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산업화 속에 주인공인 여공, 이른바 '공순이'의 비극적 서사를 '소설가'가된 주인공이 동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결심하는 작품은 울림이 있었다. 지금도 공순이 하면, 고졸 출신에 경기 공장지대 근처에서 거주하는 여성들을 집단화 해서 일반화 하는 경향이 잔재로 남아있다. 이는 생산직 남성 노동자보다 더 비하적일 때도 있다. 

 

90년대로 넘어서면 성에 대한 해방, 아마 68운동 당시 유럽이나 영미권에서 나타난 성적 자유주의가 우리는 87세대 이후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의 8장과 9장은 조금 어려웠는데, 8장의 경우 예술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를 유도하는 여성, 그리고 그 대상인 남성이 자살까지 택할 만큼 극단적인 예술성 추구를 그려내는 등의 작품을 소개해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대적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다만 과거의 여성서사가 아무리도 여성이 주인공이어도 남성에게 종속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족 혹은 남성 등 말이다. 허나 8장의 작품은 여성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정도에 이른다.

 

9장에서 키워드는 무해함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최근 몇년간 일어났던 젠더갈등에 대해 논하는 점은 없었다. 다만 무해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서로가 아예 상대를 외면하고 관계를 맺어나가지 않는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마무리한다.

 

이 책은 읽어보면 참 좋을 듯 하다. 사실 인문학 석박학위가 점점 매리트가 떨어지지만, 이처럼 한가지 주제에 깊이 파고든 학자이자 글쓴이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학문의 여정을 풀어낸 서사를 보고 있자니 너무 감동인 면도 있다. 단지 자신의 논문을 찍어서 낸 작품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한국사의 여자 주인공들이 어떤 변천을 겪어왔는지를 소설 속 인물로 그려낸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고, 어쩌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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