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는가 고윤 저
모글리 증후군을 보면서, 야생의 소년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는 현상에 대해 저자처럼 생각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왕따경험이 있던 한 선배를 떠올렸던 지인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공감을 일으켰다. 누군가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도와주지 못했던 점은 불편하기도 하고 씁쓸한 기억이다. 누군가는 그 친구는 과거의 어떤 경험 때문에 그렇다는 이유가 비판의 정당성이 된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근거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더 이상 이해해주지 않는 회피의 이유로 삼기도 한다.
나는 두 양극적 상황을 경험했었다. 과거의 상처가 있는 친구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도와주지 못했다. 그럴만한 단단함이 없었다는게 변명이었다. 그 친구가 가진 정서를 포용하기에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이 친구가 과거의 어떤 상처로 지금의 행동이 발현되는 구나, 하고 판단하고 접었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내 어눌한 행동으로 인해 과거의 어떤 신체적 충격, 머리를 다쳐서 저래 하는 소문으로 오랜 시간동안 기피 대상이 된 경험이 있다.
모글리 증후군의 대상이 된다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서도 자아를 찾을 수가 없다. 과거의 나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현재의 나는 과거로 인해 바로잡는 것에 실패하며, 미래의 나는 없다. 과거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쉽게 한다는게, 그 사람의 상태가 얼마나 야생인지를 인지하지 못할런지 모른다. 아니면 어설프게 도와주려다가 모글리는 역시 안돼란 생각으로 떠난다. 그렇게 모글리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어떤 상태의 야생에서 자라왔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모글리다. 나도 스스로가 모글리 증후군 같은 면이 있다고 본다. 내가 나를 구하지, 남이 나를 구할 수가 없다. 물론 누군가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도울 용기도 필요하다. 남을 도우려는 자세에서 나 자신을 과거로부터 구해낼 수도 있기도 하고, 나를 고치려고 애쓰다 보면 남을 도울 방법을 찾을런지 모른다. 두 가지 모두 이상적인 상황이고, 사실 아직도 나는 과거의 정글에서 해메는 기분다. 나도 나를 고치고 남을 돕고 싶다. 욕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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