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영화다. 아마 내가 거의 처음으로 본 태국산 영화가 아닐까. 내용은 가족간에 벌어질 수 있는, 범 문화적인 소재다. 말기암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할머니, 그녀가 가진 유산때문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가족과 주인공이 주제다. 거기서 주인공이 얄팍하게 달라붙었던 속물적인 정서가 진심으로 변한다. 클리셰지만 순간마다 울컥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라서.
한국에서도 죽기전까지 유산을 물려준다는 약속을 유보하라는 말이 있다. 미리 유산을 분배하고 나면, 죽을때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들의 추한 현실을 보게되니 말이다. 노년의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버림받는 상황은 너무 괴롭다. 물려줄 재산이 애초에 없거나 탕진한 노년의 삶은 초라한 단칸방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삶이다. 너무 극단적인가? 대한민국의 노인자살률 통계 혹은 1인 고령 가구의 통계가 훨씬 극단적이다. 나의 레토릭은 현실의 통계보다는 온건한 서사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게 이 영화고.
이 영화를 보면서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어린시적 꽤 오랜시간을 외조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살았다.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손에 자라면 오냐오냐, 버릇이 나빠진다 말한다. 어린시절에 친구랑 놀다 저녁 7시에서 10분정도 늦었다가 외할아버지에게 겁나게 맞은 이후, 난 시간약속은 잘 지키는 성격으로 성장했다. 외조부모의 훈육이 오히려 난 좋다. 외할머니의 사랑, 외할아버지 엄격함 등 말이다. 그중에서도 외할머니는 사실상 어머니같은 존재였다.
외할머니가 내가 뭐 공부를 얼만큼 하는지, 행실이 개차반인지 그런게 없었다. 그냥 손자니까, 아마도 남자 손자라서 그냥 내이름을 부르며 왔냐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모습이 사진처럼 내 머리에 놓여있다. 나는 다른 손자보다 외할머니에게 직접 찾아가는 빈도가 높다는 이상한 자부심으로 살았었다. 호주와 캐나다로 도피하기 전까진. 할머니는 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소식만 알고 돌아가셨다. 내가 돌아온지 이미 7년이 넘었지만 난 찾아가지 못했다. 장례식도, 나는 그냥 주변사람에게 해외에 나가있는 인간으로 지내고 있다.
아마 내가 호주와 한국에서 요양보호사를 생각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르신들을 돌볼 때, 나의 외할머니가 생각도 나고, 지금 내가 남의 어르신을 돌보는게 맞나 이런 생각도 했다. 직접 외할머니를 돌볼 수 없으니, 내가 어르신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도 나름의 은혜갚음이 되지 않을까.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 또한 내 가족에 대한 정성과 연결이 되길.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외할머니, 이젠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한 그리움등이 일을 하면서 좀 쓰리게 다가왔다.
주인공은 할머니와의 관계맺음으로, 속물적 정서를 벗어던지고 백만장자가 되었다. 사실 성공했다. 아마 그는 마음의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마음의 부자라는게 경제적으로 빈천해지면, 가끔은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그래도 삶의 밑바닥에서 날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기둥은 된다고 본다. 주인공은 결과적으로 돈도 얻었다. 할머니가 어린시절부터 들어놓은 예금, 과거의 자신이 할머니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깨닫는 장면이 식상해도 감동이다. 그 돈은 할머니를 위한 장지, 그토록 염원한 장지를 손자가 '새 집'을 사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이 영화에서 깨알같이 재미를 주는 대사가 꽤 재밌다. 주인공이 할머니에게 깐족거리는 느낌의 유머러스한 대사, 느낌이 약간 중국이나 홍콩스타일 같기도 하고 아니면 태국 특유의 정서일 수 있겠다. 그래도 모든 요소가 친근하기도 하다. 내가 태국여자애를 한 때 좋아해서 그런가. 쩝. 할머니도 그립고, 여러모로 추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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