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the Draftsman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but I still have written that shit.

짧지만, 길었던 해외생활..그 후

아재론 - 내 이름은 James (feat.야고보 성경내용주의)

p5kk1492 2025. 2. 26. 08:09
728x90
반응형

경고, 해당 내용은 추억을 빌미로 야고보서를 빙자해서 철학적 사유를 하고자 하는 글쓰기다.

 

내가 호주에서 이력서가 필요했는데, 구글에서 Resume 를 검색해서 바로 James Park (성이 박씨다) 이 있길래, 바로 복사해서 썼다. 그때부터 난 James가 되었고, 가끔 크리스찬이라고 묻는 오지들이 있었다. 난 당시 무교에다 반종교적인 사람이어서, Non Religion 이라고 했었다. 

 

지금은 Catholic 의 세례를 받고 John 요한이란 세례명을 받았지만, 여전히 난 James 로 영어이름을 쓸 계획이다. 지금은 제주도에 쳐박혀서 딱히 영어이름을 쓸일은 없지만 말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약구절도 The Book of James 에서 2:26 이다. 다음과 같다.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James 2:26 NIV

 

한국에서는 야보고서라고 하며, 야보고서는 짧고 간결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James the Just 라고 불릴만큼, 진정한 믿음은 행동이 수반되야 함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강인한 성품이 느껴진다. 아마 내 이름이 James 라 추억보정도 있다. 다음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챗지피티의 답변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James, the brother of Jesus)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중 한 명인 **야고보(James)**는 초기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요한복음 7:5),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완전히 변화되어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어(고린도전서 15:7).

그는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사도행전 15장에서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 바울과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를 논의할 때, 야고보는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지(사도행전 15:13-21).

전승에 따르면, 그는 62년경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순교했어.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가 산헤드린(유대 의회)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해.

 

야고보서는 짧아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챗지피티 형님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을 해줘서 남긴다.


야고보서 (The Book of James)

야고보서는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 중 하나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기록한 것으로 전해져. 신약에서 가장 실천적인 교훈을 담고 있으며, 행동과 믿음의 관계를 강조하는 책이야.

야고보서의 주요 주제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야고보서 2:14-26)
•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17)라고 말해.
• 즉,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2. 입의 말과 혀를 조심하라 (야고보서 3:1-12)
• 혀는 작은 지체지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3:6)라고 하면서, 말을 신중하게 하라고 가르쳐.
3.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교훈 (야고보서 5:1-6)
• 부자들에게 “너희의 재물이 썩었고, 금과 은이 녹슬었다”며 물질에 집착하는 것을 경고해.
•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쳐.
4. 시험과 인내 (야고보서 1:2-4)
•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결국 성숙한 신앙으로 인도한다고 말해.
5. 기도의 중요성 (야고보서 5:13-18)
•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의 기도는 능력이 있다고 강조해.
•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며, 기도의 힘을 설명해.

야고보서의 특징
• 매우 실천적인 내용이 많아서 “신약의 잠언”이라고 불려.
• 바울이 강조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와 다르게,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해.
• 예수님의 가르침(특히 산상수훈)과 유사한 점이 많아.

야고보서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야. 그래서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어.

난 종교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반적으로 비종교적인 자아를 지키고 있다. 이유는 양가적 정서를 통해서 균형을 잡기 위함이다. 종교인의 삶으로 천착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과 관계맺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보고서도 종교적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철학적 주제의식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철학적 메시지로 바꾸려는 노력을 챗지피티형님을 통해 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맞아. 야고보서는 기독교 신앙을 넘어 보편적인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어.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 도덕적 원칙, 인간의 행동과 결과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지. 몇 가지 철학적 측면을 살펴볼게.

1. 행위와 믿음 – 실천 윤리학 (Ethics of Action)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강조해(2:17). 이것은 단순한 신앙 문제가 아니라, 말과 행동의 일치를 요구하는 실천적 윤리학이야.
• 철학적으로 보면, 칸트(Kant)의 도덕 철학과 연결될 수 있어.
• 칸트는 **선의지(Good Will)**를 강조하면서, 도덕적 행위는 반드시 실천적 이성을 동반해야 한다고 했지.
• 야고보서 역시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 또, 공자의 “知行合一(지행합일)” 사상과도 유사해.
•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개념이 비슷하지.

철학적 의미: 윤리적 신념은 반드시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2. 혀(언어)의 힘 – 언어 철학 (Philosophy of Language)

야고보서는 혀(언어)의 힘을 경고하면서, 말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해(3:1-12).
•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언어 철학과 연결될 수 있어.
• 그는 “언어의 한계가 곧 사고의 한계”라고 했어.
• 야고보서도 혀(언어)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해.
• 소크라테스(Socrates)의 변증법적 대화 방식과도 연관돼.
• 말(언어)이 곧 인간의 사상과 삶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 불교의 “정어(正語)” 개념과도 유사해.
• 불필요한 말, 거짓말, 비방을 경계하는 점에서 철학적 교훈이 있어.

철학적 의미: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3. 부와 가난 – 사회철학과 정의론 (Social Philosophy & Justice Theory)

야고보서는 부자가 가진 물질적 탐욕을 경고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를 강조해(5:1-6).
•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과 연결할 수 있어.
• 롤스는 사회적 불평등이 있더라도,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지.
• 야고보서도 부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정의로운 분배를 강조해.
•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주의 비판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어.
•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현실을 비판한 마르크스처럼, 야고보서도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을 강하게 경고해.
• 불교의 “무소유(無所有)” 사상과도 연결돼.
• 물질적 소유보다는 도덕적·영적인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철학적 의미: 부와 권력은 도덕적 책임을 동반해야 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분배가 필요하다.

4. 시험과 인내 – 실존주의 철학 (Existential Philosophy)

야고보서는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가르치며(1:2), 고난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단련하는 태도를 강조해.
•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운명애(Amor Fati)” 개념과 비슷해.
• 야고보서는 고난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해야 한다고 가르쳐.
• 니체도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며, 인간이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지.
•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실존적 신앙과도 연결돼.
•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절망 속에서 신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고 했어.
• 야고보서도 고난이 오히려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강조해.
• 동양 철학에서 유교의 인(仁)과 불교의 고통 관(苦, Dukkha) 과도 관련돼.
• 고난을 수용하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은 동양 철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야.

철학적 의미: 인간은 고난을 통해 성장하며, 삶의 의미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 야고보서의 철학적 의미

야고보서는 단순한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보편적인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 윤리학적 측면: 신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칸트, 공자)
• 언어 철학적 측면: 말은 인간과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다. (비트겐슈타인, 소크라테스)
• 사회 철학적 측면: 부와 권력은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롤스, 마르크스)
• 실존주의적 측면: 고난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 키르케고르)

이렇게 보면 야고보서는 기독교 신앙을 넘어, 철학적으로도 매우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어.

 

나는 야고보 James 의 가르침으로 믿음과 행동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부분은 양명학에서 지행합일, 치양지와도 결이 닿아 있다. 개인적으로 양명학의 가르침도 좋아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동서양을 통찰하는 믿음과 행동, 앎이란 것은 결국 자신이 앍게 된것, 배움을 실천하고 체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까지가 안다는 것이라 본다. 그것이 지혜로움의 귀결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철학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함은 아니다. 물론 처음의 시작은 뭔가 어려운 책을 읽어서 아는척 하기 위함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으로 시작해도 스스로의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그렇게 배움이 날 바꾸고, 행동이 변하면 진정한 앎,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진정한 앎을 추구하다보면, 지혜의 맛을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James를 알게되어서, 지혜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다음은 챗지피티 성님의 답변이 이어진다.

 

굉장히 통찰력 있는 해석이야. 철학을 단순한 지적 유희나 이론적 개념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와 실천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야고보서의 메시지와 철학의 본질이 맞닿아 있다는 거지.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을 철학적으로 치환하면, **“실천 없는 배움은 죽은 지식”**이 되는 거야. 이건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철학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행동으로 구현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야만 진정한 철학적 탐구가 완성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어.

철학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철학이다.

이런 시각은 고대 철학자들이 말했던 철학의 본질과도 연결돼.
•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단순한 자기 인식이 아니라 그 앎을 통해 삶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어.
•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서 “좋은 삶(eudaimonia)”은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고 했고, 단순한 이론적 앎이 아니라 습관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봤어.
• 스피노자는 진정한 지식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
• 불교에서도 깨달음(지혜, prajna)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해.

즉, 철학적 배움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그 배움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살아 있는 철학이 된다는 거야.

 

삶의 변화가 없는 철학적 앎은 죽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철학적 지식에 대해선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해당 철학자의 책을 수차례 읽어도, 내 삶의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죽은철학에 대비되는 살아있는 철학은 묻는다면, 글쎼 좀 어렵긴 하다. 실천적인 가치를 가진 철학이 살아있는 철학인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나 칸트의 관념론 같은 생명력있는 철학을 논하자는 건지 잘 모른다. 허나 나의 있어 살아있는 철학은 아무래도 내 삶에 생동감을 주는 철학이지 싶다. 매력적인 철학이 내 이해수준에 들어오면 그때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까 싶긴 하다. 문제는 내가 철학을 이해할 만한 지적소양이 부족해서 아쉽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짜 철학을 하고 있다는 증거야. 철학을 단순한 지적 장식품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그게 바로 철학의 핵심이니까.

사실 철학을 공부하는 누구나 지적 허영과 실천의 간극에서 고민하게 돼.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때론 거기서 오는 좌절감도 커. 하지만 중요한 건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그것을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

네가 말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면, 작은 행동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짜 배움이라는 게 너무 공감돼. 이게 바로 철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겠지.

철학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세”다.

플라톤이건 니체건, 모든 철학자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하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을 자기 삶에 적용하고, 거기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그게 진짜 철학적 태도 아닐까?

네가 말한 **Philo(사랑) + Sophia(지혜)**라는 의미도 중요해.
철학은 지혜를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과정 자체야.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미 철학을 하고 있는 거지.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건, 스스로 성장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 자세가 있는 한, 너는 계속 철학을 “살아낼” 거야.

챗 지피티가 현실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한 철학적 고민을 물어봐서 세가지정도 답했고, 성님이 답과 질문을 던져줬다.

1. 인간관계(관계맺음)의 어려움

인간관계는 철학적으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야. 여기에는 여러 철학적 접근이 가능해.
• 사르트르(Jean-Paul Sartre): “타인은 지옥이다.”
• 타인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껴.
•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어.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는 너다(I-Thou 관계)”
• 관계는 **수단적인 관계(I-It)**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관계(I-Thou)**가 되어야 한다고 봤어.
•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대를 “목적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할지도.
• 공자(孔子): “어진 사람은 외롭지 않다.”
• 관계는 억지로 맺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이 중요해.
•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나 스스로 어진 사람(仁者)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시각도 가능해.

→ 고민할 질문:
내가 관계를 맺을 때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너무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

2. 수익이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

이건 삶의 목적과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대한 문제야.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좋은 삶(Eudaimonia)이란?”
• 그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고 했는데, 이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야.
• 만약 좋아하는 일이 너의 본질적인 가치와 연결된다면, 돈을 떠나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어.
• 니체(Friedrich Nietzsche): “운명애(Amor Fati)”
•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했어.
• 돈이 안 되더라도 그 일을 선택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일지도 몰라.
•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소유냐 존재냐?”
• 돈(소유) 중심의 삶이냐, 좋아하는 일(존재) 중심의 삶이냐의 문제야.
• 프롬은 소유 중심의 삶은 결국 공허함을 불러오고, 존재 중심의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주장했어.

→ 고민할 질문:
돈을 떠나,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진짜로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나는 ‘소유(돈)’보다 ‘존재(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가?

3. 지혜로움에 대한 갈망

이건 단순한 지적 욕구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과도 연결될 수 있어.
• 소크라테스(Socrates):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 진짜 지혜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아는 데서 시작해.
• 네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혜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야.
• 장자(莊子): “지혜는 물과 같다.”
• 장자는 물처럼 흐르는 삶, 고정된 답을 찾지 않는 태도가 지혜라고 봤어.
• 혹시 지혜를 완벽한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오히려 더 유연해지는 게 지혜일 수도 있어.
• 파스칼(Blaise Pascal):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인간은 연약하지만, 생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위대하다.
• 네가 계속 배움을 갈망하는 한, 이미 지혜를 향해 가고 있는 거야.

→ 고민할 질문:
나는 지혜를 어떤 형태로 정의하고 있는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더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결론: 네가 찾고 있는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지금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관계, 좋아하는 일, 지혜)은 이미 철학적으로 가치 있는 질문들이야. 그리고 중요한 건, 네가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거지.

내 영어이름 James 에서 철학적 사유까지 이어지는 이 의식의 흐름, 어떻게 보았을런지 모르겠다. 추억의 이름과 성경, 그리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동경하는 철학적 생각들을 챗지피티를 통해 해소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게 실제 주변에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내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