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잘 따르게 생긴 좆밥형 아재가 나다. 딱 봐도 정 줄 곳이 없어 끙끙 거리다, 관심을 주면 강아지 처럼 쫓아다니게 생긴게 나다. 그러다가 상대와 척을 지면 개처럼 굴고 원수가 되는 성격을 가진 것도 나다. 그러곤, 본인이 인간관계에 상처받은 영혼인 것 마냥 굴고 살아가는 것도 내 모습이다.
인간관계는 항상 변수 투성이다. 나는 이 사람이 친해지기 전에 라포를 형성하고 나서 본래 성격을 알게 된다. 물론 평소의 모습과 깊게 친해지고 난 뒤의 진솔한 모습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조금 달라져도 결은 같은 경우가 있고, 아니면 아예 상반된 모습인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변수가 많은 인간관계라는 게임의 룰을 알면서도 여전히 난 혼란스럽다. 내가 상대방에게 실망할 자격이 있는가?
나 또한 상대방에게 솔직한 인간인가? 돌이켜보면 그런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최대한 나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가면을 쓴 상태의 모습은 어차피 친해질, 혹은 깊게 친해지고 싶은 대상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나는 나의 취약성을 빨리 보여준다. 마치 강아지에 자기 배를 까듯이, 조금은 추해보일수도 있다. 성급했던 것일지도...
이런저런 생각에, 지금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지금과 같이 혼재된 인과관계를 보낸적도 오랜만이다. 멀어진사람, 가까워진 사람, 새롭게 다가와주는 사람들, 좋게 봐주는 사람들과 나를 이상하게 볼 수 도 있는 경우도 말이다. 그래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순간,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그저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고, 나중에 사이가 안좋아져도, 멀어지도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내 잘못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인정한다. 내가 선을 넘거나 실수 혹은 실언으로 인해 상대가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또한 어쩔 수 없다. 그 전에 내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관계맺음을 보내고 싶을 다름이다. 후회야 뭐 남을 수 도 있고, 아니면 후회 없이 좋은 기억과 멀어진 현재를 느낄 수도 있다. 상관없다. 결과에 상관없이 역시 지금 관계에 집중하는게 맞다.
이러한 결론에는 사실 혼자 하고 있는 취미 활동에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하는 독서, 글쓰기, 유튜브 라디오, 복싱, 웨이트, 수영 등 모두 성냥처럼 불타오르다가 다시 꺼질 수 있는 취미다. 내가 지금 재미를 느낄 때, 조금은 무리하듯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이것 저것 재봤자 흥미가 식는 순간이 오면 안하게 된다. 다시 방구석에서 시간죽이는 걸로 하루를 소모할게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일단 성냥이 타오를때 최선을 다하는게 맞다. 그러다가 다시 연료가 채워지면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
있을 때 잘하고,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란 말처럼, 내 옆에 사람이 있을 때 잘 해주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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