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변덕인지, 장마철이라 예보없는 비가 내리곤 한다. 어제가 그런 날인데, 아이폰 날씨를 너무 맹신해 우산없이 다니다 비를 다 맞았다. 비를 맞으면서 짜증과 헛웃음이 섞여 나왔다. 그런 중에 비오는 내인생에 우산은 어디에 있을까란 잡스러운 망상이 떠올랐다. 순간의 내 의족적인 성향에 혀를차며, 내가 우산이 되진 못할 망정 스스로에게 비나 쳐 맞아야된다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내 성향이 그러한건지, 환경의 영향인지 타자에 대해 의존적인 성향이 드러났다. 지금은 많이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메타인지가 좀 되는 편이지만, 어린시절은 가관이었다. 조금만 친해져도 집안사정에 대해 읊고 다니고, 스스로를 낮춰가면서 관심을 끌곤했다. 눈치를 많이 보다보니, 나에게 좋은 친구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많이 의존하곤 했다.
어리니까 그런 성향을 몰랐다. 근데 이제 소위 철이들면서, 내가 좀 친해진 사람들에게 의존하려는 태도가 있다는 점을 느꼈다. 사람들이 지적할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냥 내 스스로가 좀 역했다. 내가 외동이다 보니, 외동에게 풍기는 특유의 편견에 대해 좀 거부감이 있었다. 사람들의 편견이 아닌, 내가 외동처럼 행동하는게 혹여나 있을까봐 스스로 겸열했다. 외동같지 않다고 해주면 좋아하는 것도 나는 지금 보면 의존적인 성향의 편린이라 본다.
대학에 오고 부터 의존적인 성향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부분을 많이 느꼈다. 대학생활의 부적응이 나에게 많은 시간을 주었고, 그시간에 혼자하는 취미를 많이 배워나깠다. 내가 배웠던 운동도 전부 혼자할 수 있는 운동들이었고, 책을 읽거나 하는 등의 취미도 그러하다. 물론 방구석에서 컴퓨터로 쏟아내는 시간의 비중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에서의 나혼자산다보다 해외살이가 더 스스로 자립심을 길러주었다. 해외는 한국인이라는 소수의 인간으로 살아야하니 좀더 의존적 성향을 줄이고, 또 숨기고 했다. 물론 조금이나마 친해진 사람에게 많이 의지해버리곤 했다. 극단적이었다. 아예 혼자산다 느낌으로 살거나, 아니면 순간 친해진 사람과 깊게 연결된 것 마냥 굴었다. 해외에서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확실히 의존적인 성향이 올라오는 그 감정을 인지하고, 사전에 차단한다.
비오는날 우산이 되어줄 만한 사람을 찾았던 시절이 지나갔는데, 장마철에 다시 찾아왔다. 내가 그런 우산이 되어주지 못할 인간이라면, 비를 맞고 혼자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가 의존할 때 느낀 감정이 마냥 좋지많은 않았다. 관계라는게 상호보완적이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아야지, 기울어진 형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서로에게 불편한 추억만 남기니 말이다. 차라리 그런 관계라면 우산없이 비맞으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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