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내기, 안톤 체호프

p5kk1492 2024. 7. 2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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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은 은행가와 변호사의 객기어린 내기로 시작된다. 사형과 종신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변호사의 종신형 발언에 발끈한 은행가가 독방 5년을 두고 200만루블을 건다. 변호사는 호기롭게 15년을 말하고 그렇게 독방생활이 시작된다. 이 어처구니없는 내기는 아마 200만 루불이 굉장히 큰 돈이었기 떄문일 것이다.

 

15년만 참으면 200만 루불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변호사, 아마 은행가는 중간에 포기하겠거니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15년에 시간동안 대체로 책읽기의 몰두한 변호사는 엄청난 양의 서적을 독파한다. 그동안 은행가는 200만 루불을 지불하기 힘들어진 상황에 처한다. 예전에는 200만 루불은 별거 아닌 돈이었으나, 몰락해가는 은행가는 어쩌면 변호사가 도중에 도망치길 바란다.

 

그러던 중 15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날, 혹시나 은행가는 포기하려나 싶은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변호사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마흔살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초최한 몰골로 변했다. 그의 편지에는 자신이 읽었던 책의 감동과 지혜를 말하면서도 결론적으로 혐오한다.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도 혐오하고 자신은 스스로 독방을 나가 200만 루불을 포기한다는 편지를 쓴채 앉아 있었다.

 

이에 은행가는 자신이 200만루불을 아까워 하던 생각을 두고 깊은 자괴감, 스스로에 대해 경멸감을 느낀다. 그렇게 변호사는 사라지고, 그의 편지는 조용히 금고안에 넣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처음에 시작은 평범한 토론이었는데, 단순한 객기의 내기가 뭔가 인생을 건 도박이 되었다. 도박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당사자의 삶도 변하고, 상황도 변했다. 은행가는 단순히 돈이 아까운 상황이었지만, 변호사는 아예 다른 인간이 되어버렸다. 혼자만의 긴 시간과 책이 준 허무주의가 가져온 결과일까. 

 

흔히 감옥에 갔다오면 지식이 된다는 농담이 있다. 물론 범죄자가 교정되는 건 아니고, 정치범의 경우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소양을 갖춘 경우가 많아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해당 단편의 변호사는 극도의 고립속에서 책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반은 미쳤고, 반은 해탈한듯한 느낌이다. 나도 어딘가 갇혀서 원하는 만큼의 책을 공급받으면서 산다면, 어떤 상태가 될까라는 생각으로 하면서 이 책을 곱씹으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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