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꽤 파도가 있었다. 쓰나미급은 안되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세월에 정통으로 맞은 지점이 있었던 부분은 나름 자부할 수 있다. 4학년 1학기 까지 다닌 대학을 마치지 못했던 시절,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생각하던 중에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오던 순간이 내 인생에 굴곡진 터닝포인트다. 인생이 좆되던 모멘텀이 두번이 있었다. 나도 나름 인생에 파도많은 놈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겪은 파도, 뭐 시련이라고 부르기는 좀 거시기 하다. 당시에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고, 오랜시간 그 후유증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냥 파도라고 은유적으로 넘기고 싶다. 진짜 시련을 겪은 사람들도 넘치는데, 나는 그냥 파도가 좀 있었다 정도로 봐야지 않을까. 그리고 난 내가 겪었던 사건들에 대해 그저 다 내가 자초하거나 원인과 결과 모두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누군가를 탓할 문제도 아니었고, 사회를 비판하거나 그런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가정사까지 내려간다. 하남자지만, 최악의 하남자 레벨로 가고싶진 않으니까.
인생에서 중요한, 물론 젊은 시절에서의 한정이지만 두개의 큰 사건 속에서 중요한 교훈은 멘탈리티의 중요성이었다. 정신적인 취약함이 내 인생에서 큰 발목을 잡은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변하긴 했다. 예전에는 조금 힘들면 주변에다가 힘들다는 표현도 하고, 마치 취약한 멘탈이 내 감수성과 예민함을 상징하는 듯한 병신같은 태도로 살았던 부분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보호받고싶고 애정받고 싶어하는 태도로 내 자신을 방치한 셈이다.
그렇게 취업을 준비하고 불안감과 우울감, 과도한 에너지를 쥐어짜내다가 도망치듯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2년의 호주생활, 그리고 캐나다를 가면서 다시 캐나다에서 이민을 준비하다 결국 멘탈의 결정타를 맞았다. 정확한 사정은 말하기 어렵지만,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황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캐나다 영주권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인 준비가 갖춰져도 자신의 멘탈에 대한 관리가 안되는 사람은 절대로 중요한 시점을 버티지 못한다.
캐나다에서 겪은 파도는 내인생에서는 좀 쏐다. 쓰나미급은 아니어도 내 삶을 집어 삼킬만큼의 데미지였다. 아무런 커리어도 없고 학력도 없는 인간에게 한국사회는 자비롭지는 않다. 지금도 사회경제적 계급은 형편없다. 내가 결혼을 할 생각을 못하는 부분도, 객관적으로 결혼할 자격이 안되는 부양능력 미달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책임질 사회경제적 지위도 없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멘탈리티를 가진 채 가족을 만드는 것은 범죄자나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을 일삼고 다니던 내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사족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 되고보니, 그렇게 애비를 닮기 싫어 열심히 살았는데 애비만도 못한 인간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살짝 느끼기도 하고.
지금 이렇게 담담히 자기고백을 할 수 있는 글을 쓰는 힘이 생긴것도 캐나다에서 돌아온지 7년만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 걸렸다. 지금은 다시 사람들과 조금은 멀쩡하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취미들을 만들어주는 정신까지는 회복했다. 그리고 한가지, 왠만하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 위주로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한다. 예전처럼 정신적으로 무너졌을때, 좋은 습관을 패턴화 하면 견뎌낼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정신은 내가 지키는 수밖에 없다.
제목이야 인생 파도많은 놈이라고 했지만, 늘 글로 풀어내는 중복된 레퍼토리다. 서울에서 호주로 추노, 캐나다에서 다시 제주로 도망 등 두가지 챕터가 내 인생의 상징성있는 실패사건, 그래서 자주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저 같은 이야기에 내 생각을 변주해서 글을 쓸 뿐이다. 어차피 내 블로그를 꾸준히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주 우려먹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관계속에서 성장하고, 행복을 찾곤 한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갈망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국 내가 에너지를 회복하고, 내 정신력을 지키고 성숙시키는 시간은 혼자있을 때다. 이건 분명하다. 내가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건강하게 교류할 수 있다. 예전처럼 의존적이고 취약함을 드러내면서 동정을 얻어내려는 관계형성은 최악이다. 내 눈에 들보를 도려내려고 나는 오늘도 주변의 티끌은 외면하고 있다. 인생의 파도가 사람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모르겠다. 다만 예전 사건의 반복만은 아니길, 그건 정말 미친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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