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가까운 시간, 나는 내가 평소에 말하는 법조차도 까먹을 만큼 사람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시기가 있다. 내가 무슨 마약을 하거나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인생에서 두번의 큰 파도아래서 무기력하게 무너진 상황을 맞았을 뿐이다. 정신적인 데미지가 신체적으로 얼마나 삶을 절망케 하는지 느꼈고, 또 그 회복도 서서히 혹은 갑자기 나타나는 경험도 하게되었다. 2022년에 회복의 기미가 보였고, 2년이 지난 올해에는 거의 예전 만큼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로 살아간다는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게 전부다. 하나이자 전부인 그 행위가 내가 엄청난 회복이라고 평가하고 자주 언급하고 글을 쓰는 서사다. 24년의 내가 없었으면 아마 22년은 허무했을 것이고, 22년의 조짐마저 없었다면 난 여전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달고 사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살아있어도 죽은거나 마찬가지인 정신을 가진 체 말이다. 아래는 불편하겠지만 일부 구절을 빌려오고자 한다.
Then he said to him, "Rise and go;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Luke 17:19 NIV
세례받은지 고작 2년, 22년의 나는 회복의 조짐과 안좋아질 징조가 뒤섞인 자아였다. 그래서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근처 헬스장을 찾듯이 성당을 찾아갔다. 그렇게 2년동안의 시간이 지나 내 노력이 아닌게 분명한 회복을 경험중이다. 나는 9명의 갈릴리사람보다 1명의 핍박받가 치료를 받은 사마리안이 되길 원한다. 오랜 세월 신념을 갖고 살아간 종교인이 아닌, 반 종교적이고 절대자를 부정했던 인간이 보여주는 신념과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을 옮기기로 말이다.
과거에도 잘되면 조상탓, 안되면 내탓이란 방식으로 살았고. 진인사대천명을 떠올리며 항상 살아왔다. 그런 삶에서 단지 서구의 종교가 내 외피를 덮고 내면을 채운 것이다. 종교는 철학보다 명징하다. 사실 고민을 덜 해도 되고, 감사의 주체가 명확하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타협한 변절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으로 치면 난 기댈 곳을 얻었고 감사의 대상을 찾은 셈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으로 오롯이 일어난 서사를 들고 강연에 서겠지만, 난 방구석에서 내 치료감호기록을 작성한다.
내가 올해느끼는 이 회복과 치유의 기분을, 내년에는 다시 불안과 우울 그리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내몸이 망가졌고, 정신이 약해진 상태기에 언제나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다가 또 회복이 되면 좋고, 아니면 다시 어두운 길을 가야지 않겠는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동양의 천명과 서양의 예수가 합치하는 세계관에서 난 그저 하나의 흙덩이로 살아갈 뿐이고, 감사할 뿐이다.
일어나 가라, 너의 믿음이 널 치유했다.
'일상 끄적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1-15 오늘의 구절 (2) | 2024.11.15 |
---|---|
2024-11-14 오늘의 구절 (0) | 2024.11.14 |
2024-11-13 오늘의 구절, 누군가 당신 곁에 있음을 알길 바라며 (1) | 2024.11.13 |
겸양의 교훈이 복종으로 오독된다. (0) | 2024.11.12 |
2024-11-12 오늘의 구절 (0) | 202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