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구절에서도 작금의 세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일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만큼 분열과 갈등이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 시대에 살고 있는 구성원이기에, 지금의 분열이나 서로의 욕망의 충돌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의 위협을 가한 인물에 대해 정확한 심판을 해야 한다. 과거의 프랑스였다면 단두대에 올라가야 했겠을 것이고, 나치와 협력한 세력들 처럼 처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주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때 불행은 이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과 한국을 보라. 조선은 왕을 스스로 쳐내지 못하고 일제에 식민지가 된 백성들의 나라였다. 대한민국은 36년의 일제 치하에서 기생하던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해, 부역하는 자들이 잘 살고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의 후손이 비루해진 국가가 되었다.
그때 청산하지 못했던 역사적 경험을 양 쪽에서 다 교훈으로 삼고 있다. 누군가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쪽은 이번 만큼은 제대로된 가치를 수립하기 위해 싸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익을 쫓는자와 공익을 추구하는 자는 그저 흔적일 뿐이다. 허나 우리는 현실을 살고 있고, 사익과 공익을 추구하는 주체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사익을 추구한다고 비판하기도, 왜냐면 우리는 누구나 사적 욕망이 있으니까. 공익을 추구한다고 정의인가?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당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를 주체와 그 부역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사익과 공익 넘어에 있다. 파괴된 공동체에는 사익과 고익 모두 사라진 무법의 공간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파괴된, 그저 힘의 논리로 군림하는 절대 악일 뿐이다. 우리가 피를 흘려 구축한 시스템을 파괴하려 했던 그 주체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청산이 필요하다. 그 뒤에 사익과 공익의 균형이건 나발탱이건 간에 챙기자. 그때 선택한 리더가 또 잘못하면 다시 시스템 안에서 비판하고, 다시 선택하자. 지금은 그 문제가 아니란것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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