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2024-08-14 오늘의 구절, 욕망을 줄이는 삶

p5kk1492 2024. 8. 1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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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of the day

So I say, walk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flesh.

Galatians 5:16 NIV

 

Honor God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kind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so that they may rule over the fish in the sea and the birds in the sky, over the livestock andthe wild animals,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Geneis 1:26 NIV

 

My Concerns

I lift up my eyes to the mountains-where does my help come from? My help comes from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Psalms 121:1-1 NIV

 

성령의 길을 가면, 육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게 된다는 내용의 구절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양한 종교에 각자 교리가 있으나, 욕망에 대해 부정적인 관념을 내포하는 점이 공통점이다. 물론 사이비는 신도들에게만 욕망을 통제하고 교주들은 그들로 부터 욕망을 충족한다는 점이 보편 종교와 다른 점이긴 하다.

 

종교를 갖기 전에부터 욕망을 줄이는 삶과 태도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 순전히 내가 가진 능력에 기인한 결과값이었다. 욕망을 크게 가지기엔, 내가 가진 능력이 부족함을 일찍 느꼈다. 지금처럼 되기 전부터 무엇인가를 크게 욕망하거나 하지 않고 살았다. 20대때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마 내가 가졌던 욕망 중에는 제일 크고 줄이지 않았던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도 망나니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내 욕망을 줄이는 삶과는 다르긴 했다. 뭐 지금은 타의적으로 이성에 대한 관심도도 줄긴했으니 일단은 넘어가본다.

 

욕망을 줄인다는 것은 삶의 그릇을 줄여 작은 부분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한심하다 생각할 수 있다. 모두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자 열심히 자기계발도 하고 커리어도 쌓고 있다. 자기 자신의 가치, 상품성을 높여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메리토크라시라고 불리우는 능력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보상체계에 대해 나는 탈락자가 맞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산다. 그래서 내가 가진 욕망줄이기는 그다지 종교적이거나 숭고하지도 않다. 아마 나도 내 욕망을 채울 능력이 된다면, 혜민스님처럼 풀소유를 때리지 않았을까.

 

종교를 갖고 난 뒤에는 좀더 내 욕망줄이기 프로젝트가 잘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사실 뭐 큰 시련이 오지도 않는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실 사회적으로 기회가 오지도 않을 뿐더러,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능력이 쥐꼬리만하기 떄문에, 지금도 쥐꼬리만한 보상을 받을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별로 긁히지 않고, 그냥 덤덤하다. 이미 두차례 폭풍이 내 삶에서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기나 체념의 개념에 가깝지만 어떤 평가에도 뭐 그렇다. 아무렴 어떠냐, 이또한 살아가리라.

 

요즘의 삶은 내 삶의 가치를 보상받지 않고 하는 일들로 내 욕망을 줄이는 삶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운영하는 블로그의 수익은 현재 몇십원정도의 가치를 지녔다. 글을 스크립트 삼아서 라디오컨셉으로 녹음하는 유튜브는 수익창출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러 다니고, 티도 안나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운동을 한다. 내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는 데에는 직접적인 활동이라 보기 어렵다. 독서하는 습관도 포함해서 말이다.

 

내 영혼의 양식은 되지만, 내 욕심을 채우는 활동이라 보기엔 어렵다. 정말 내 욕심을 채우려면, 아마 한국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영주권을 도전해서라도 내 대졸중퇴 학벌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다녔을 것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는 삶을 끝내기 위해 몸에 맞지 않을 옷을 찾는 인생을 살았을 텐데, 싫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데 재미를 느끼고, 이 글을 라디오로 재생산할 때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 아무도 안보지만, 소수의 누군가는 와서 봐주고 있다는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 취미로 노래방이나 운동을 할때 후련하다. 이런 삶과 최저임금 노동자라는 스펙이 섞이면 비루해 보일 수 있다. 뭐 월급을 많이 벌지못하는 37세 남성인 점은 자랑은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욕심없이 살아가는 데에는 제격이긴하다. 자의와 타의가 조화롭게 섞인 욕망을 줄이는 삶을 살아가기에는 딱이다. 뭐 궁상맞다는 표현도 좋고, 레디메이드 인생의 2024년 버전이라 해도 좋다. 난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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